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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08.23 거울을 보네
  3. 2018.08.21 회계원 블루스

멀어지는 길

글/시 2018. 10. 10. 00:49 |

멀어지는 길



한밤에 집으로 가네

점점 발이 무거워지고

난 어깨에 맨 가방을 들쳐 매고

가로등 밑을 조용히 지나

나 집으로 돌아가네

그러나 발자국은 점점

느려져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전부 거짓말 같지

난 비몽사몽 꿈에서 깨어나서

거울을 보고 면도를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내가 생시인지 아직 꿈을 꾸는 건지


그때 창 밖에서 요란하게

동전소리가 났고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지

내 턱에서는 한 방울의 피가 흘러내리고

거울을 향해 웃어보였다네


옷을 갖춰 입고 거리를 걷는 나의 모습은

누가 지적할 일도 없어 보였지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금화소리는

날 가면 쓴 광대로 만들고


너무 길었던 하루가 끝나고 너무 짧은 밤이 오면

나 한 몸 뉘일 집을 찾아 가네

그런데 왜일까 걸으면 걸을수록

내 집에 더 가까워지면 내 발은

고철처럼 무거워지며 점점 더뎌지는데

해는 지평선 밑을 흐르고 있다네


나 또 잠이 들면 거짓 속의 죽음을 찾겠지

결국 깨버릴 짧은 모든 망각의 늪을

그리고 해는 날 두들겨 깨워 눈을 뜨고 말테고

그러면 나 또 거울을 보며 웃는다네


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

나 아무 것도 없는 내일을 향해

Posted by Lim_
:

거울을 보네

글/시 2018. 8. 23. 21:28 |
거울을 보네


거울을 보네, 내 삼촌이 보여
그는 오랫동안 직업이 없었지
그가 정신병원에 갇혀있던 모습이 보여
난 도망치려고 일을 배웠지

아무도 수염이 무성한 그를 받아주지 않았어
난 면도를 하고 약을 삼켰지
사람답게 살아야 해, 어머니가 말했어
나는 이제 밤거리에서 일을 하지

거울을 보네, 아버지가 보여
평생 빚을 갚느라 일을 했지
아버지가 보여준 사랑은 슬픔으로 보여
수십 년간 그는 단 하루도 일을 쉰 적이 없지

내가 아플 때 주변엔 아무도 없었어
그래도 난 면도를 하고 약을 삼켰지
난 세치 혀로 밤에 금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었어
동생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건 왜지

거울을 보네, 너무 깊어서 보이지 않네
언제가 되서야 땅 밑에 누워 쉬게 될 지
알 수가 없네
Posted by Lim_
:

회계원 블루스

글/시 2018. 8. 21. 23:20 |
회계원 블루스


옆집 김씨에 대한 소문이 돌았지
그의 머리가 댐에서 발견됐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
그저 술이나 몇 번 같이 마셨을 뿐이니

옆집 김씨가 이렇게 말했었지
젊었을땐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네
김씨는 작은 회사의 회계사였지
나는 술을 한 잔 더 따라줬다네

옆집 김씨에 대한 소문이 돌았지
경찰이 그의 몸을 찾지 못했다고
나는 김씨가 찍은 사진이 몇장 있었지
생각했어, 볼품없지만 솔직하다고

나는 럼 한병을 가져와 마시다가
김씨의 작품들에 그것을 부었다가
그 위에 담뱃불을 던졌다네
나는 말했네, 이제 회계일은 안 해도 되네

옆집 김씨에 대한 소문이 돌았지
마침내 그가 죽었다네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