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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에 의하면 그는

글/소설 2022. 11. 29. 22:06 |

소문에 의하면 그는

 

 

1.

 도대체 누가 저지른 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도시에 나에 대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응급실에 실려 갈 때마다 능숙하게 거짓말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라는 인종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고 심지어는 훈련된 관찰력까지 있다. 그들은 내 거짓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으나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 세 번의 시도들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을 것을 상상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 집 천장에 두 개의 시꺼먼 구멍이 나버린 일을 모두가 알고 있는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한강 공원 한구석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 물을 토하고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도대체 누가 삶이 아름답다는 말을 함부로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매번 마지막이어야 했을 잠에서 깰 때마다, 올가미 안에 머리를 넣으며 스스로에게 미소 지었을 때마다, 공중에서 자신의 몸무게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그런 순간마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매번 나를 배신했다. 이것은 정말로 저주라도 받은 것 같다.

 나는 내가 선택할 죽음에 대해 어쩌고저쩌고하며 옹졸하게 늘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끝날 것이다. 나라는 세포들을 가득 담고 움찔거리는, 생각보다 너무 단단했던 그릇도 이제는 깨질 것이다. 내 오른손에는 소주가 잔뜩 담긴 비닐봉지가 있고 주머니에는 손잡이까지 금속으로 된 나이프가 있다. 우선 위장에 소주를 들이부어, 내가 새로 맛볼 고통 때문에 스스로 망설이지 않게 할 것이다. 그리고 칼은, 사방에 널린 게 콘센트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시도로 엉망진창이 된 몸이 전기에 한껏 지져지면, 아무리 여태 버텨왔던 몸이라고 해도 생명이 남아날 리가 없다.

 우선은 방으로 돌아가 소주를 따야겠다.


2.

 도시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그 소문은 너무 구체적이라서 사실상 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작정하고 만들어낸 것 같았다. 내용인즉 여섯 번의 자살시도를 실패한 사람이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 번의 음독자살을―첫 번째와 두 번째는 수면제 과용이었으며 세 번째는 메탄올을 들이켰다고 한다― 시도했으나 매번 며칠 뒤 응급실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두 번 목을 매달았으나 첫 번째는 실링이 부서져 내렸고 두 번째는 천장 타일이 뜯겨나오며 떨어졌다. 마침내 그는 모두가 그렇게 하듯이, 마포대교에서 난간을 기어올라 한강물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곧 살아있는 채로 하류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소문이라기에는 너무나 세세하고 구체적인 이야기였다. 덧붙여 그가 드디어 성공하고 말 일곱 번째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도대체 출처조차 알 수 없는 정보까지 나돌고 있었다. 애당초 이상한 것은 왜 이런 이야기가 소문이라는 형태로 돌아다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뉴스에까지 나올법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다 신빙성 있는 루트로 이야기가 퍼져야 마땅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크게 신경을 쓸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는 도시 괴담 같은 것에 지나지 않고, 이 좁고도 넓은 도시에서 내가 소문의 주인공과 만나게 될 가능성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그 불쌍하고 안타까운 누군가가 일곱 번째 시도를 성공시키든 그러지 못하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나는 나를 위한 준비를 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벌써 직장을 구하지 못한 지 2년이 지났다. 아니, 그렇지 않다. 처음 한해는 분명 아무리 시도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뒤부터 나는 모든 의욕을 잃고 저금해두었던 돈만 천천히 까먹으며 일 년을 보냈다. 이 일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흐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은 누구에게나,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발견하고 만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 일 년 사이에, 내게는 더 이상 삶을 헤쳐나갈 그 어떤 의욕도 원동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나에게는 가족도 없고 내 삶에 있어 중요하게 여길 만한 ‘그 무언가’도 없다. 애당초 멀쩡한 모습으로 직장에 다니던 시절이 이상했던 것이다. 그것은 목표도 목적도 없는, 오로지 관성에만 의지한 생존방식이었다. 그런 것을 나는 일 년간의 백수 생활에서 확연하게 깨닫고 만 것이다.

 죽고자 하는 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날은 오늘이다. 정확한 방법은 아직 생각 중에 있다. 다만 그 얼토당토않은 소문이 내게 약간의 교훈을 주기는 했다. 정말로 확실하지 못한 방법이란 계획의 나머지 부분을 운에 맡겨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비닐봉지에 소주를 가득 담은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주 확실한 방법을 떠올리는 데 알코올이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3.

 그들이 서로를 지나치고 있다. 소주를 잔뜩 들고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처음 남자가 졸피뎀 한 병을 입안에 쏟아부었을 때 나는 평소처럼 수거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도 많이 봐온 장면 중 하나였고, 일상처럼 행하는 업무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나는 그때 남자의 방안을 둘러보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길거리를 거닐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 마냥, 버릇처럼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졸피뎀뿐만이 아니라 트리아졸람이 가득 담긴 병을 발견했고, 분명히 목적이 있어서 쌓아놓은 복사기 토너들을 발견했고, 서툴게 매듭을 지은 올가미부터 아주 완벽하게 길이를 맞춘 밧줄 매듭까지 온갖 것들을 발견했다. 그 더럽고 엉망인 방 안에서 체계가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물건들뿐이었다.

 그때 내게 한가지 발상이 떠올랐다. 낙엽을 치울 때도 한곳에 모아놓았다가 단번에 자루에 담는 법이다. 나는 이 남자가 빗자루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각이랄까, 계획이 완벽하게 정리되어있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내 영감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수면제를 한 병 삼키고 10분도 되지 않아 남자는 휘청거리더니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러나 나는 그를 수거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누군가가 그의 방으로 들어와 응급차를 부르고 난리를 쳤다.

 그다음에도 나는 그를 수거하지 않았고, 다시 그랬고, 다음엔 천장의 실링에 약간 장난을 쳤으며, 또 같은 일을 반복했다. 남자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변화가 나타났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개념에게서 약간의 장난스러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정확히 예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다. 나는 내가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 자살중독자는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주었으면 했다. 나는 길에서 자는 이들, 진심으로 웃지 못하는 이들, 손톱을 씹는 이들에게 남자의 이야기를 속삭였다―이 일을 하면서 나는 아주 예전에 만났던 어떤 학자를 떠올렸는데, 그 이야기는 지금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자 그들은 눈을 뜨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금세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남자가 일곱 번째 헛수고를 준비하는 사이 나는 첫 번째 성과를 찾아냈다. 그는 원래부터 자질이 있었으나 ‘소문’ 덕분에 자신도 모르는 새 죽음에 대한 방비를 다 풀어놓은 상태였다. 나는 위에서 낙엽을 치우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남자의 일곱 번째 시도에도 절망한 실업자의 첫 번째 시도에도, 나는 결과물을 쥐여주지 않을 것이다. 곧 두 번째, 세 번째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계속 소문을 퍼트릴 것이다. 아무도 수거되지 않을 것이다. 도시 모두가 죽음이란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허상 같은, 그야말로 거짓말이나 장난 같은 것이라고 느끼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낙엽은 모조리 한 군데에 모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쓸어 담기만 하면 된다. 벌써 몇몇 동료들이 내 작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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