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은 계속 빨라지고
왜인지 발걸음은 빨라지는데
내겐 딱히 갈 곳이 없다
목적하는 곳은 없다, 내 시간은 내일을 향해 흐르지 않는다
미래를 믿지 마시오,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온다고 누가 말했지?
이 땅에는 해가 뜨지 않는 밤도 있다, 내가 걷는 이 밤도
어디서 끝날지 누구도 모른다, 나는 물론,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목적하는 곳은 없다 그런데
발걸음은 계속 빨라지고
정신차려보면 황혼이다, 해나 달을 본지 너무 오래 되었다
어딘가 골목구석에 앉아 벽돌색의 세상에 대해 노래
부르고 싶지만 밤이 오기 전에 어서 걸어야한다
밤이 오기 전에, 눈이 내리기 전에
빙하기가 오기 전에
발걸음은 계속 빨라지는데
구름은 항상 나보다 빠른 속도로, 지구의 저편으로 간다
스쳐지나간 수많은 공간들은 내게 텅 비어있었다
어딘가에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 사랑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망각은 심연보다 어둡고 괴물적인 아가리로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수증기 가득한 숲에서 나무들은 생명을 잃고
내가 밟는 것들은 수억 살 먹은 시체들의 유골, 나는 비문 하나 없는 묘지를
서걱서걱 밟으며 걸어가 버린다
안녕, 금화들의 도시여, 나는 미래를 믿지 않지만
나의 죽음만은 믿는다. 내 발걸음은 계속 빨라지고, 향하는 것은
종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씩 나를 더 가쁘게 한다, 멈추는 방법은
태어난 이래 누구에게도 배운 일이 없다
이 행성은 왜 자전을 멈추지 못하지? 별들에게 시를 읊을 시간이 그에겐 없다
어떤 것은 끝나야만 한다, 혹은 모든 것은 끝나야만 한다, 하늘은 얼어붙고
눈이 내리지도 못할 정도로 꽁꽁 얼어붙고, 나는 걷는 얼음, 흙, 진창
또 밤, 밤 뒤엔 다시 밤
행성과 같은 속도로 걷는 눈동자에게
비치는 것은 계속해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