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정리
오늘은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애당초 내가 외로움에 취해 중학교 동창들 전부에게 연락을 걸어 간신히 만든 약속이었다. 요즘 시끄러운 전염병 때문에 사람도 없는 길거리를 담배 뻑뻑 피우며 지나가, 역전에서 동창과 만났다. 어느새 동창이 어른의 눈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중학생 때는 눈이 좀 더 맑은 갈색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회사에 자리 잡은 게 몇 년 째지? 3년이 넘었다고. 그래, 이렇게 되는 법이구나. 그러나 유감일 것도 없었다.
이봐, 결국엔 시대를 타느냐 마느냐 하는 거야. 뭐? 누가 했던 말이야?
중학교를 졸업하고 난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다. 중학교도 온갖 폭력사건이나 사고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가지 예로 지금도 중학생 시절 동창들을 만나면, 그들이 재미있는 옛날 얘기랍시고 꺼내드는 것이 내가 수업 중에 선생에게 의자를 집어 던졌던 사건이다. 그런데 난 머릿속에 그 기억이 전혀 없다. 동창들이 하나 같이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분명 일어났었던 사건인 것 같은데, 나에게는 전혀 기억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식이었다. 내 학창시절이라는 것은. 부수고, 때리고, 책상을 뒤엎고, 증오하고……. 그렇기에 당시 내 주치의는 고등학교 진학을 말렸었던 것이겠지. 그때부터 친구들과 전혀 다른 인생의 궤를 돌기 시작했다. 한 여름 마포대교 밑에서의 삶은 끔찍했다.
무슨 이렇다 할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사람이 너무 일찍 실패하는 데에 이유 같은 건 없는 모양인가 봅니다. 딱히 목숨이 아까운 것도 아니지만, 저녁에 한강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이렇게 끝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대체 왜 뜬금없이 캘리포니아에 있었지? 지금도 이유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웨스트우드에서 가장 싼 다인용 숙소를 잡고, 거의 먹지도 않으며, 아무 연고도 없는 타국에서 멍하니 살았다. 식사는 3일에 한 번 했던 것 같다. 가까운 마트에서 파는 냉동 부리토는 맛이 아주 끔찍해서, 거기서 사귄 친구에게 빌린 중국산 고추양념을 퍼붓듯이 해야 겨우 목을 넘어갔다. 낮에는 주로 로비(호텔 등의 로비를 생각하면 로비라고 할 수도 없는 공간이었지만)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발의 브라질 남자가 내게 인사를 걸어왔다. 얼굴에는 그 어떤 악의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기초적인 악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내민 파이프를 그렇게 쉽게 피웠던 것 같다.
너는 항상 행복해보여, 파블리시오.
나는 3분마다 이걸 피우니까. 자유로워지는 데 필요한 건 돈이나 권력이 아니야…….
그럼 우리 다 같이 웃자고. 옆방의 세르비아 친구들도 데려와. 다 같이 연기처럼 웃어보자고.
그러나 지나가보니 모두 환상. 시간은 손가락 사이를 지나가는 개울물처럼 스쳐갔다. 귀국한지 2개월이 지났을 때에 느닷없이 코트 주머니 속에서 나온 마른 식물 줄기는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내 온 인생이 감금될 수도 있었어. 고작 3시간의 해방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중학교 동창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었다. 술이 들어갈수록 방언처럼 터지는 그의 말마디들은 더 이상 옛날의 그것과는 같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얼마 전 중병에 걸렸다가 회복했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때부터 가족을 위해 일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얼마 전 아버지가 녹내장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나를 회상했다. 아버지에게 안대가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응? 시간조차 망상인데. 남은 것은 결국 시간도 초월한 괴로움뿐이지 않느냐 말이야.
차라리 죽어도 괜찮다면…….
동창은 지하철로 걸어 들어가는 마당에, 내가 전과 다름없이 여전해서 기쁘다고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