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글/시 2014. 9. 26. 07:26 |

도망자


아침마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들이 무슨 생활을 하는지
내 과거에 비추어본다.
사실 그것은 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生은 이미 없다.
새벽마다 병의 이름을 가진 상념과
어둠과 밤과 달의 속삭임과
별들의 혼잣말과 영원히 잠들지 않는
도시의 빛살과 가로막힌 벽들과
근대의 유물이 된 사상과 지껄이는 밤요정들과
너무 무거워진 존재 때문에
빈 집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구멍 뚫린 흉부에 채워 넣을 무언가라도 찾으려고
밤거리를 배회하다가―그들의 실패는 자명한 것이다―
마침내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떠오르는
태양의 귀퉁이를 두려워하며
이제는 햇살을 피해 다시 빈 집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이따금 그들은 서로 마주쳐
동류의 냄새를 맡고서 주춤거리지만
서로 말을 섞거나 새침하게 악수를 하는 일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동정과 자괴감과
도무지 불이 붙지 않는 분노와 방향을 잃은 증오와
종말에 대한 허망한 기원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빈 집으로 도망치는 그들을
천박한 언어로 바라본다.
내가 낮에 술을 마시는 이유도 태양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은
나는 그나마 야간 生活者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원하는 것이 없는 이를 구하는 방법이란 없으며
내가 찾은 구원의 찌꺼기라는 것도 결국
술과 담배와 약물과 詩임을
알고 있음이다.

Posted by Lim_
:
모든 밤에는 잠들지 말자


어둠 속에 앉아있으면
담배연기 뿜는 내 숨소리조차 방해다.
사방이 밤으로 가려진 좁은 내 돌의자 위에서
나는 공간이 무한히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담뱃불을 끄고
해왕성 너머 가본 적도 없는 심연에
내 가죽 하나를 걸치고
종말의 소리를 기다린다.

시간이 멈추는 곳은 도시의 밤이다.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깨어있는 채로 잠들어있기를 원하지만
또 태양이 뜰 것이다.
아무도 바라지 않는
또 하나의 아침이 시작될 것이다.

빛이여, 빛이여
너는 누구에게도 안식이 아닐 것이다.
너는 숨죽이던 사물들 위에
빛의 가시를 박아 넣고
꿈꾸던 시인들을 깨워
백주의 폐인으로 만들어 놓는다.
풀벌레 우는 적막을
구두 소리로 된 디스토피아로
추락시켜버린다.

새까만 어둠으로 만든 내 요람을
뒤집어 흔들어 깨워
멀리 꿈속의 고향으로 미뤄놓고
근대의 야수들과
욕망과 천한 상념 속으로
날 떨어트리고 빛으로 비추는
너.

차라리 사막의 백야로 보내다오.
리큐어와 눈과 흔들리는 눈동자로
빛을 가리고 혼돈의 춤을 추는
태양의 시체가 사방에 내려앉는
그 사막으로.

얼어붙은 지중해 위를 나는 끝없이 걷고
별들이 가리키는 방위를 나는 찬탄한다.
모든 이들이 목적이라는 것을 잊고
새하얗게 말라버린 채 방황하고
나 홀로 얼음에 죄업을 묻는
그런 밤에.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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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너무 밝고

글/시 2014. 9. 23. 12:52 |
아침은 너무 밝고


오늘은 또 세상이 왜 이리 또렷한가.
구름을 통과해 비추는 햇살은
왜 이리 맑고 투명하여 도시의 온갖
그늘진 거리와 몰락한 집들을
번쩍번쩍하게 비추는가 말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카페인을 과량 섭취하는
내 나쁜 버릇은 도대체 뭘 믿고
탄생한 것인가.
왜 일터에서 돌아와 쓰러져 누워야할 때
하필이면 동두천에서 선생질 하는 친구가 보고 싶고
마누라한테 용돈 타다 사는 백수 친구도 보고 싶고
대머리 벗겨진 기타 치는 친구도 보고 싶고
애인과 함께 툭탁거리며 살고 있을
피라미드 사업하는 친구가 보고 싶어서
결국엔 아무나 불러내서
오전 10시부터 맥주 한 잔 걸치고
아침부터 술 마시고 비틀대기에는 태양에게 다소 죄송하여
그리 저렴하지는 않은 카페에 가서 몇 시간이고 썰 풀며
커피에다 맥주를 말아먹는 기행을 벌이냔 말이다.

자기 손으로 커피콩 볶아 마시는 친구가 말하길
카페에서 파는 커피들 순 가격 뻥튀기라더라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이 천천히 끈질기게
올라가기만 하는 경제대국에 살고 있는 것을.
그래서 이곳에 살면서 가끔
내 가격도 언젠가 조금은 오르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품곤 하는 것이다.

카페인으로 인하여 유리구슬처럼
어릴 때 주워다 상자에 모으곤 했던 유리구슬처럼
맑고 흠집투성이가 된 정신으로 생각해보니
어젯밤 내가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해가 질 때쯤에 출근했던 것은 기억나는데
퇴근할 때까지 15시간 동안 뭘 했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맨 정신에 필름이 끊겼나.

그나마 육신이 기억하는 것은
담배를 좆나게 피웠다는 것이다.
너무 피워서 폐가 진액을 토할 정도로
담배 피우다 죽을 놈처럼 피워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곧 담배 값이
별다방 커피 값이랑 비등비등할 정도로 오른다고 하는데
내가 그 거금을 내가면서 담배를 피울
배짱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아, 그러나 시바, 담배를 피워야만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담배를 배우기 전에도 시는 미친 듯 썼었고
담배를 처음 배운 열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 평생 피울 담배를 다 몰아서 피웠고
허파가 더는 못해 처먹겠다고
붉은 머리띠 매고 파업 들어갈 정도로
흡사 자살시도 하듯이 피워댔으니
이제 그만 피워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괜히 군인들이 걱정이다
이젠 피엑스에서 담배 면세도 안 해준다는데
죈 종일 흙탕물에서 구르고 담배 살 돈도 없으면
그네들은 어떻게 사나? 이거 또 보나마나
군대 자살률 급상승하게 생겼다.
대통령 각하, 우리 대한건아들은
자기 돈 내고 기관지에 독극물 쏟아 넣을 자유도
없는 것이지 말입니까.

독극물 하니까 말인데
오래 전에 키우다 시골 보낸 우리 개새끼
친동생보다 이쁜 우리 개새끼 
시골집에서 어디 쥐약 주워 먹고 죽은 것 아닐까
그것이 걱정이다.
쥐약 먹고 죽은 개로는
개장탕도 못 끓이는데.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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