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사와 순경과 경찰과 공무원과 그리고 사람과
글/에세이 2025. 5. 23. 15:54 |순사와 순경과 경찰과 공무원과 그리고 사람과
순사.
주변에 순사도 없으니 상관없지 않느냐고 큰아버지가 말했다. 그 말에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순사!”하고 외쳤고, 큰아버지의 팔을 감고 같이 걸었다. 큰아버지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며 걸었다. 그는 어린 동생에게 하듯 껄껄 웃었다. 둘 모두 취했고, 머리가 하얗게 센 영감님들이었다. 나는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기억에 따르면 작년 추석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도무지 순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오늘 느닷없이 떠올랐다. 책장을 뒤져보니 그것은 <이방인>의 뫼르소가 한 말이었다.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불쾌한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는 경찰이며 구청 단속반 따위가 생각났다. 내 기억으로, 나는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잘못을 저지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게, 입은 열지 않지만 줄기차게 거북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기분 같아서는 멱살이라도 잡아 도대체 무슨 악감정이냐고 캐묻고 싶지만, 공권력을 뒷배로 둔 놈들과 문제를 일으켜봤자 하등 도움 될 일이 없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어느 친구가 ‘그것들은 조금이라도 비일상적인 사람을 찾아 주시하라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진압봉 따위도 들고 다니니…….
그래, 누구든 먹고는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주치기 싫은 인종들이다.
아마 오 년이나 육 년 전에, 나는 친구와 거나하게 마시고 캄캄한 새벽 골목을 걷고 있었다. 친구의 집에서 더 마실 계획이었다. 그런데 나는 골목 안쪽 가장 어두운 구석에, 사람 하나가 쓰러진 듯 주저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만취한 것 같은 중년 사내였고, 얼굴이 가려 보이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서글퍼 보였다. 계절은 한겨울이었다. 다가가 아저씨하고 부르며 상태를 확인했고, 조금 뒤에 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남자는 깨어나더니 입을 열었는데, 이미 얼굴이 눈물범벅이었음에도 계속 울고 있었다. 20분이 넘도록, 습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맥락 없는 하소연을 힘겹게 늘어놓았다.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나 그가 슬픔과 좌절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무책임한 위로를 했다. 달리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울며,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했다.
경찰차는 2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경찰 둘이 내렸다. 하나는 젊었고 하나는 50대 초반 즈음으로 보였다. 젊은 경찰이 취객을 일으키는 사이 나는 중늙은이 쪽에 말을 걸었다.
저분이 많이 슬퍼 보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저희가 할 일이 아니고, 우린 맡은 일만 하는 겁니다.
순간 나는 그 자식 혀뿌리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품에 뭐라도 있었으면 저 귀찮고 성가시다는 얼굴 한복판에 박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태울 사람 태우고 출발하려는 참이었다. 그따위 것들에게 사람 하나를 넘겨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와 죄악감이 용암처럼 혈관을 돌았다. 그러나 차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민중의 지팡이.
그 외에도 경찰 내지는 짭새라 불리는 인간들과의 불쾌한 경험은 하나하나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군인이나 치안유지·사회정의 명목으로 움직이며 월급 타는 것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부 늘어놓아봤자 별 의미도 없다.
그런데 재작년 즈음에 나는 동갑내기 친구 한 명을 사귀었다. 그의 인상은 순박하고 선했으며, 내가 진행했던 작품이나 업무에도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도 나에게 친구로서 호의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으며, 조금 과장하자면 적지에 서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좋은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경험을 숨기거나 에둘러 말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간 겪어온 경찰에 대한 좋지 못한 경험이나 내가 경찰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천천히, 그러나 거의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자기도 ‘경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런 이야기도 덧붙였다. 자신의 아버지도 경찰이었는데, ‘경찰이란 것들은 믿을 게 못 된다’고 말씀하셨노라고 말이다.
나는 소리 내 웃었다. 그도 웃었다. 웃는데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 자리에는 순사가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 누구의 세상살이도 변한 것은 없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웃고 다닌다. 순사들과 같은 길에는 여전히 서지 않는다. 그들이 등불 비추지 않는 어두운 길에선 지금도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결말이 맹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