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9'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5.05.19 전에는 안 그랬었는데 말이야

전에는 안 그랬었는데 말이야


1.
 그때는
 요기처럼 몸을 뒤튼 채
 장판 바닥에서 책을 읽어도
 관절이며 근육, 뼈가
 고함치는 건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알았다니까

 자판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구부정하게 의자 위 앉아
 다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지칠 줄도 모르고

 아무리 담배 연기를
 허파에 우겨 넣어도
 기침 한 번 하는 일 없이
 독무 속에서만 숨을 쉬어도
 불편마저 없었고

 밤길에 검은 고양이를 만나면
 생명이 아니라
 포우가 보이는
 그런

 덧붙여,
 술집에서 시비 붙어 흠씬
 두들겨 맞아도
 고장 난 장난감처럼 깔깔깔깔
 깔깔
 웃기만 하는
 그런 거
 였는데.

 전에는
 안 그랬다니까


2.
 순간마다 뼈연골근육심장뇌수가
 비명 지르며 의식의 멱살을 잡아
 모조리
 멈추고

 이백만 원짜리 의자 성능
 떠드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고, 그래도 옛적처럼
 지갑은 비었고,

 요샌 숨소리에서도
 잡음이 나, 목소리가 둘로
 갈라지기도 하고

 오늘은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새까만
 새끼 너구리를 봤어
 그놈이
 잘 살았으면 싶더만

 술은,
 무서우니
 이제 됐고.

 누군가는 내가 온화해졌다 하는데 사실은
 바닥없이 지쳤어.
 너무 가속해
 쇠했어.


3.
 더는 만날 일도 없는 바텐더들
 저게 누구냐고 하겠네, 저
 인형 같이 미소지으며
 논알콜 맥주 시켜놓은
 저 손님 말이야

 사실,
 나도 이게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누군들 알겠어……

 그래도 창밖의 밤은 또 들여다보네
 어제처럼
 엊그제처럼
 십오 년 전처럼.

 뭐, 이러나, 저러나, 아직도, 자발적으로, 입에
 담배 따위 물고 있으니
 여러모로 실망은 안 시킬 거야

 당신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쇠락한 몸과 더불어
 사실은 여기
 그대로라서,

 이 동네는 대낮에 태양에게 떠드는 놈들과
 새벽 세 시에 불 켜진 창문들도
 무진장이라.

 물살 흐르는대로 털퍼덕
 거리며 몸을 굴려, 이렇게까지
 왔어도

 장마 오는 계절
 언덕에서 쏟아지는 빗물 헤치며
 침수된 지하실로 귀가하는
 꼬맹이도,
 반갑게도,
 여기 그대로라서.

예전엔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