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창조.

기록/생각 2010. 8. 9. 05:40 |
 생각할 것, 생각할 것!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해 언어나 표정 따위를 품어둔 채 타인을 찾아 헤맨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와 표정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틀림없이 이 땅 위에서 수천 수만번은 더 반복되었을 그 언어와 표정들을 끄집어 내놓을 때에는 자신들의 오만에 취해 황홀해하는 것마저 엿보인다. 낡고 닳아 없어지기도 전에 강한 휘발성으로 흩날려 사그라지는 것을. 나는 그들을(그것들을) 증오하고 있다. 하나의 문장으로 형태화 시켜 놓고 구두점을 찍어야만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나는 그들과 대화할 줄을 모른다. 그들이 내 앞에 와서 웃는 낯으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의 언어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내가 끈질기게 보고 있는 것은 그들의 피학적인 목, 그리고 물어뜯으면 쉽게 찢어질 것 같은 그들의 살거죽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신이 나간, 양민들의 안심을 위하여 살과 철근으로 쌓아올린 벽 속에 가둬버려야할 그런 성질의 인간인 것은 아니다. 나는 살가죽이 얇아 안에 들어있는 내장과 혈관들이 전부 드러난 인간이다. 귀를 막고 자신의 광증에 설득당해 똑같은 사고를 돌고 도는 행복한 미치광이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갈비뼈조차 갖지 못한 심장이고 두개골을 잃어버린 뇌수다.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광인들이 모두 겹겹이 둘러쌓인 자기합리의 벽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담아놓을 뼈대조차 손에 넣지 못하고 길바닥에 쏟아져 고통받는 내장 같은 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안다고 해서 무엇이 변할 것이란 말인가. 인간은 인간의 세상밖에 알지 못하고 개인은 개인의 세상밖에 알지 못한다. 구별당하고 분류당하는 것은 타인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절대적인 일이다. 필연적인 일이다. 한탄할 수도 있고 분노할 수도 있지만 변하는 것은 없으리라. 매일 아침 태양빛에 절망하는 사람은 해뜨기 직전의 새벽에도 절망한다. 주관은 연결되지 않고 폐쇄된 채 완전하며 아무런 감각기관도 가지지 못한다.
 생각에 집착하라. 개인의 증명은 무의식의 표면에 쌓인 사유의 침전물들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항상 정신의 구심점에 병증과 함께 붙잡아 놓은 화두가 있어야만 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과 언어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관념들을 한 마디의 문장으로 해명할 수 있는 독재의 사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을 하나의 완성된 여과기로 만든다. 그러면 비로소 개인은 수많은 사유의 침전물로 다져진 단단한 발판 위에서 정신의 주안점에 시각을 두고 세상을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 동시에 창조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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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잠이 온다. 나는 거의 세시간 간격으로 잠이 들며 꿈을 꾸고 꿈을 꾸고 또 꿈을 꾼다. 괴상한 꿈들이다. 꿈 속에서 나는 지고한 존재로 변신하기도 하고 삶을 긍정하며 느긋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존재에 대한 충실감으로 가득한 채 행복의 표피 안으로 손을 집어넣기도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순간을 영원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꾸어본 적 없는 꿈들이며 내 유아적인 욕망이 허위없이 여실히 드러나는 꿈들이다. 항상 해왔던 말들이지만 나는 가치를 찾아 헤매고 있다. 마침내 끝에 가서는 먼지처럼 아스러져 손에 쥐었던 것도 집어삼켰던 것도 전부 사라지게 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치를 갈망한다. 살아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살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 혹은 가치를 찾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구분지어 말하지는 못하겠다. 아마도 그것은 복합적인 사실일 것이다. 그것도 결국에는 인간의식인만큼 모순되고 왜곡되었으며 동시에 그 모순과 왜곡으로 논리를 보완하고 있는 하나의 지저분하고 동물적인 사이클일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고 정신병자의 논리체계다. 그러나 그것이 의식하는 동물의 전부이자 본질인 것이다. 애당초 의식과 동물은 손을 잡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꿈. 꿈에 대해서 마저 이야기해야한다. 꿈은 의식과 추상만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동물의 냄새는 남을지언정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행복하기까지 하다. 나를 죽이려드는 음모임에 틀림이 없다.
 게다가 나는 행복하기까지 하다. 나를 죽이려드는 음모임에 틀림이 없다. 계속해서 꿈을 꾸니 이제는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사물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오고 나는 한여름밤의 밀폐된 공기 안에 갇혀 울고 있다. 원망하는 눈길을 받으며. 원망하는 눈길을 받으며. 꿈 속에서 나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막을 헤맬 필요가 없다. 내 정신은 낙타의 혹처럼 기름지고 갈증을 내는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몇 번이고 자살을 상상한다. 울면서 잠들어 울면서 깬다. 절망과 불안은 그런 것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 욕망덩어리 세계를 거쳐 가차 없이 무겁고 치명적인 것으로 변한다. 그냥 내버려둬도 얼마든지 화려하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의도들이 있다.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몸부림치며 경계조차 불분명한 현상 위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하나? 내 인생마저도 통째로 바꿔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의 어림짐작으로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추한 눈을 기억하라. 친절과 기대는 즉 나를 모델화하려는 추잡한 욕망의 증명이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엉망진창으로 터트려버리고 싶다. 속에 있는 내용물이 거짓 없이 전부 흘러나오도록. 병증과 병원과 약물과 치료와 상담과 불신과 관계와 정신. 정신병리학적이지 않은 정상적인 관계들. 정상적인 관계야말로 가장 비정상적이고 불안하다. 차갑고 축축하며 여지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정상적인 관계가 정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비정상적인 관계는 말그대로 비정상적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절망스럽고 혼란하다.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목적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이미 모든 것의 결말까지 추측하고 나태하게 늘어져있는, 좌절한 정신이 있다. 그것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좌절해있다. 그리고 믿을 것이라고는 그 지독히도 현실적인 회의밖에 없다. 꿈. 꿈! 욕망의 발로!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인가? 내가 병든 정신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폐쇄를 바란다. 어떤 논리나 관념이나 실재에도 침범당하지 않는 정신병자의 믿음이, 아니다. 모른다. 무엇을 욕망해야하는지도 모른다. 보다 살고 싶지만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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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병균 - 비정상적인 강한 열 속에서만 생존하는
나는 토오라는 표범과 말레이 여자 마라를 만났다
토오는 나를 미워한다
나는 마라 몰래 토오에게 구하기 힘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직 따스한 암소고기를 먹인다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 길들지 말라고
갈색 피부의 마라 - 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여자를 소유하고 있기를 하나
나......'토오를 내쫓아', 마라......'나는 토오가 없으면 잠이 안와요'
나는 토오를 미워한다. 토오는 마라의 애정 일부를 빼앗고 있다
우리는 대륙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열파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춥다
흰 여자가 흰 남자를 사랑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갈색남자가 갈색 여자를 사랑할 때는?

내 심장은 전쟁을 원하고 있다
나는 마라를 사랑한다
마라는 일어선다. 나체로 갈색으로 사랑하면서 
나는 태양병이 무섭다
그리고 우리의 피는 소리를 지른다
호수 한가운데서 나는 세계를 향하여 소리질렀다. '마라!'
마라, 우리의 사랑은 안죽어
태양은 나를 죽일 것이다
갑자기 광적인 생각이 엄습해 온다. 
죽음이 구제를 갖다줄지도 모른다는,
그러나 숲의 화제는 광기다
사랑하는 불, 사랑하는 숲이여,
너는 죽어야 한다
나는 고통없이 사랑할 수 있으리라
나는 한계 위에 서있다

 
- "태양병" / H. 노바크

이 쪄죽을 듯하고 열광적인 냄새를 사랑한다.
갈증. 종말적인 이미지지만 동시에 영원할 것만 같은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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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열기가 도로 위를 미친듯이 내달린다. 저 열기도 언젠가는 사그라들 것이다. 그리고서는 떨어지는 낙엽들도 곧 사그라들 것이며, 녹아 없어지는 눈이 내린 뒤에는 말라 시들어버릴 꽃들이 필 것이다. 이렇듯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확신은 있다. 사실 확신은 있을 수 밖에 없다. 나도 썩고 부스러질 것이다. 썩고 부스러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야하는가? 아직 죽어본 일은 없지만 죽음은 보편적 진실이기는 하다. 언젠가 모든 것이 산산히 흩어질 것이니 나는 만족하고 살아가야하는가. 과정은? 과정은 어떻게 되나. 내가 목적론자라면 아마도 과정은 모두 끝나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쳐도 상관 없는 현상의 표면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적론자가 될 수 있을 만큼 무언가를 긍정하지 못한다. 나는 목적마저도 부정한다. 그래,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별다른 지침도 없이 무작정 손에 쥐게 된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광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하기 위한 약들도 있다. 과정. 과정이라니! 도대체 과정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이미 확신을 가졌다. 나는 죽는다. 그렇다면 나는 쾌락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아니면 선험적 성질로 말미암아 퇴폐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궁극적으로 회의하기만 할 뿐인 나는 결코 쾌락주의자는 되지 못하리라. 나는 쾌락이라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거세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야 무엇이든간에, 나는 우울과 공허에 빠져 인중까지 허무에 잠겨버렸고 무엇을 하든 불신과 무기력으로만 대응한다. 다소는 열정적이거나 열광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은 그것조차도 허무에 대한 열광과 열정인 것이다. 최근에는 글을 쓸 수가 없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모든 부조리한 위협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작게 웅크리고 있다. 나는 자주 웃는다. 나는 나의 웃음을 증오한다. 그것은 역겹고 기만적이다. 보편에게 반항하기 위해 내 육체적 진실들과 화해하기를 거부했지만 나의 근육과 뼈들은 피조차 나지 않는 작은 흠집에도 고함을 질러대고 끊임없이 먹을 것을 탐한다. 여름이다. 여름이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무자비한 여름이다. 더위와 습기가 모든 쓰라린 상처들을 곪아 터지게 한다. 골목골목마다 악취가 나는 고름덩어리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희희낙락한 살갗을 보는 것이 공포스럽다. 우리는 병들었나. 우리는 병들었는가.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치열하면서도 무력하게 생존을 갈망하는 그들의 눈과 마주치는 것이 소름끼친다. 오늘은 여름이다. 열기가 도로 위를 미친듯이 내달린다. 나는 내 이상성을 증명하러 나간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간다. 삶이여. 삶이여. 삶이여.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다. 파열하고 싶다. 산산조각으로. 공포스럽다. 종말과 마주치고 싶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고독하다. 당연한 사실이다. 사실 곧 무언가를 다시 쓰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불안은 이성과 악수하지 못한다. 밖으로. 자살자들이 뛰어다니는 밖으로. 나도 쏟아지는 폭염 속에서 무언가와 맞닥뜨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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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

기록/생각 2010. 7. 14. 03:53 |
 나는 알 수 없다. 세상은 태어나자마자 폐허가 되었고 탄생일은 내게 저주나 다름없었다. 그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눈에 들어오는 온갖 가치들에 손을 뻗고 그것을 잡아당겨 뿌리째 집어삼킨 후 또다른 가치에게 손을 뻗는다. 가치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내 정신의 근본 구성성분들을 갈아치운다. 그래서 나는 가치의 본질까지 보았다. 나는 내가 절멸해 없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더이상 먹어치울 가치조차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치의 본질이 곧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기는 커녕 실제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를 위한 미덕 같은 것이며 인간을 위한 믿음 같은 것이다. 나는 내가 절멸해 없어진다는 것밖에 믿지 않는다. 존속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해야할 것이 많지 않다. 해야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고, 나는 온갖 것들에 대하여 알 수 없다. 나는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을 단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으로써 망가졌고, 신념과 법과 신성을 모조리 위와 장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오물통에 내버리고 나니 내게 남은 것은 취향과 감정밖에는 없었다. 세상은 태어난 이후에도 재차 폐허가 되었다. 나는 억압당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강조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도 과거의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약물의 기만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이미 난 내 정신과 영혼조차 타인의 학문에게 맡겨버린 구제불능의 좀비 같은 것이 되었다. 내장을 쏟아내고 죽어버리고 싶다. 정직을, 정직을, 정직을. 모든 사상과 이념이 정신질환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은 문명이 탄생한 순간 죽었다. 산산조각으로 찢어발겨져 죽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조차 아니었다. 인간이라는 종에 햇빛조차 반사되지 않는 깨끗한 유리창은 포함되지 않는다.

 글을 써야한다. 글을 써야만한다. 글을 써야만하고 써야 할 글을 생각해내야한다. 모든 것에 정통한 오만한 나는 뻔한 피해망상 속에서 내 정신과 미학에 대한 음모를 느끼지만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백수천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지독한 악순환이다. 내 정신과 사고는 악순환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정리될 수 있다. 나는 악순환이다. 나는 회전하는 재앙덩어리다. 나는 글을 써야한다. 나는 글을 써야하는데 그들(혹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내 문학은 덫에 걸렸다. 발목이 물렸다. 호르몬제와 화학물질의 이름을 단 쇠로된 이빨에게 사정없이 물렸다. 선생님, 당신이 내 예술에 대한 박해의 주모자라고 말해주십시오. 선생님, 당신이 내 예술에 대한 박해의 주모자라고 말해주십시오. 선생님. 선생님, 모든 것은 당신과 당신들의 탓입니다. 나는 궁지에 몰렸다. 나는 기만을 위한 기만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기가 괴롭기 때문에 기만을 위한 기만에게서 도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기만한다. 내 어디에 잃어버린 것이 있고 내 어디에 채워진 것이 있단 말입니까. 자살. 잃어버리면 자살해야한다. 충족되어도 자살해야한다. 나도 자살하고 내게 안락을 주려는 것들도 전부 자살해야한다. 거짓으로 도움을 청한다. 도와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은 독이다. 육체의 독과 정신의 독과 영혼의 독이다. 언어는 이미 모조리 뒤집어져있기 때문에 나는 실상을 말할 수 없다. 울 것 같다. 울며 죽을 것 같다. 글을 써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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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호르몬만은 믿어야한다. 설령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한다. 오늘도 아침이 왔다. 밤이 지나간 기억도 없는데 아침은 온다. 정당성과 자연주의적인 욕망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가 눈을 감아야 할 순간을 알지 못한다. 온갖 알약들 덕분에 졸음에 대한 내 감각은 엉망이 되버렸다. 나는 졸음과 피곤을 구분할 줄 모른다. 피로를 못견뎌 몸이 무너지기 전에 새까맣고 깊은 약기운이 나를 무너트린다. 행복한 상념이 있었다. 외롭지 않은 이미지도 있었다. 갈증이 있고 욕망이 있으며 목적한 것을 향해 가차없이 손을 뻗어대는 유아적인 탐욕이 있었다. 내 뇌를 통과하는 신경들을 붙잡아 나락 밑바닥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는 병리학적 메커니즘들이 있다. 내가 토해낸 것을 다시 긁어모아 집어삼킨 두통도 있다. 절대를 부정했고 잣대를 부정했으며 도덕을 부정했고 진리를 부정했고 소위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에 존재를 맡겼다. 나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산산조각난 인격들이. 이천십년 칠월 십일. 시간은 무자비하게 흐른다. 혐오하는 것들을 주워삼켰다. 공포스러운 것들을 씹어삼켰다.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나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나는 틀림없이 근거가 필요합니다. 내 병증도 광증도 행위를 위해서 정당함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은 내 몸무게만큼 균형이 잡혔을 것이다. 59kg의 돌발상황. 59kg의 불규칙성. 59kg의 명백한 오류. 그러나 자기비하가 아니다. 나는 당당하게 자기비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결말지어진 존재가 아니다. 59kg. 터무니없이 가벼운 수치고, 영향력이 없다. 내가 책을 출판한다고 생각해보자. 책 한권의 무게는 어림잡아 500g이다. 500g에 판매부수를 곱한다. 많을 수록 좋을 것이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권력일지도 모른다. 나는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원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또한 단언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더이상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믿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사멸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히틀러. 히틀러는 무엇을 원했던가. 히틀러는 <조국>의 국민들이 열화와 같이 자신에게 동의해주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아마도 그 불행한 인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불행한 인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불행한 인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모든 열정들은 동등하다. 도덕을 부정했으니까. 모든 열정들은 동등하고 어딘가에서는 찬미받으며 어딘가에서는 증오받는다. 별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지구 밖으로 나가보라. 그들은 당신의 열정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규정짓는 타인. 하지만 그것도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도피적인 뉴에이지 사상에 미쳐있지만 않다면, 당신은 지구 위에 땅을 밟고 서있는 비참하고 초라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는 절대적으로 사멸한다. 어쩌면 나는 권력을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 어떤 가치도 영구하지 않다고 단언하면서도 어떤 무거운 가치를, 내 존재성을 인정해줄, 증명해줄, 뒷받침 해줄 그런 강력한 가치를 만들어내려고 발버둥치는 중인지도 모른다. 발버둥. 발버둥. 어떨까, 사실 난 그런 단어에 어울릴정도로 열성적인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무기력도 8할 정도는 약물의 탓이다. 그들이 날 안정시켜주겠다고 말하며 건낸 약. 위대한 정신병리학이여. 하지만 괜찮을 것이다. 사방이 캄캄해지기 시작하는 초저녁에, 세상에는 배경음악도 없고 정해진 계획표도 없다. 그저 유치하게 강간을 한다. 강간을. 생명력. 충실한 생명력. 범법. 집단사회. 최소한의 예의. 도덕. 전통. 탈피하다. 위버맨시. 야수. 개인. "혁명가는 증오하기 위해 증오하고 파괴하기 위해 파괴한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던 것들이지만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혁명주의자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가지 정당할 수 있는 전체주의(집단)가 있다면 그것은 그 어떤 이상이나 사상도 가지지 않고 오직 모든 체제의 붕괴를 위해서만 원한을 불태우는 전체주의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으로 심장을 재울 수 있다. 내 혈관 속을 흘러다니는 호르몬과 화학물질들로 나의 병증이라는 것들을 다소나마 제한할 수 있다. 공격성은 억압당하고 증오는 가라앉아 결정화 되며 슬픔은 천박한 유쾌함에 가려져버린다. 졸음 속에서. 졸음을 위한 메커니즘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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