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 기억

기록/생각 2021. 2. 2. 19:28 |

 저주스러운 놈들, 저주받을 놈들! 중학교 3학년 여름에 선생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수련회 참석에 동의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종이쪼가리들은 우리 학생들이 서명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의 부모가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3학년 모두가 그곳에 갔을 것이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늘 어설프게 웃는 얼굴인 불쌍한 성배 같은 아이들만 빼고 말이다.
 모두가 서명을 했다. 모두의 부모가 서명을 했겠지. 좋은 곳에 다녀오라고! 다른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학교가 그런 행사를 했다. 더 굳건한 정신과 육체와 감사하는 마음을 육성하려고 말이다. 그런 거라면 무어 어쩔 수도 없다. 교육 정신이란 매 세대 바뀌는 것이니까.
 우리는 수련회 캠프에 나흘쯤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나흘 내내 아주 죽상이었다. 우리는 매일 새벽마다 산능선을 뛰고 지치고 엎어질 것 같으면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조교들에게 억지로 일으켜 세워졌다. 어설픈 해병대 캠프 같은 짓거리를 강요당했으며 낙오자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혹사당했다. 음식은 거지 같았으며 특히 김치가 전에 먹어본 일이 있는 것이었다. 중국 공장에서 대량으로 수입해오는, 여름철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나는 그 김치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하라는 대로 따르며 모든 일을 비웃고 있었다. 나는 이미 중학교 1학년 초에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혹사시킬 수 있는지 적당히 겪어보았던 것이다. 매일 산길을 60km씩 걸어야 하는데 따라가지 못한다고 초등학교 2학년짜리 꼬맹이를 걷어차는, 그런 모습을 나는 이미 익숙해지다 못해 재미를 느낄 정도로 자주 보았었고, 인간이 공포와 폭력 속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흥미로운 마음으로 확신했었다.
 그러니까 그런 일들은 전혀 유감인 것도 저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나의 몸은 오랜 운동과 훈련으로 강철 같았다. 나는 전부 비웃으면서 나흘을 보냈다. 불평할 이유도 욕설을 내뱉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저녁, 그 망할 놈들! 온몸을 육시할 것들!
 그것들은 학생들을 모조리 강당에 모아놓았다. 조교들을 빼면 모두가 지치고 엉망진창이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고 빈틈투성이가 된다. 그놈들은 틀림없이 알고 있었겠지! 그놈들은 그게 직업이니까! 팔을 뜯어내서 그 팔로 뒈질 때까지 두들겨 팰 놈들!
 그 쓰레기들은 우리가 강당에 무너지듯 앉자마자 쓰레기 같은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 거지 같은 새끼들! 그리고 조교들의 대장 격인 놈이 되먹잖은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 아버지의 뼈 빠지는 노동! 어머니의 희생! 너희처럼 제멋대로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아들딸을 위해서! 눈을 감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려라! 그분들이 얼마나 조건 없이 너희를 위해주었는지 돌이켜봐라!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약하고 정신에 약점밖에 없는 불쌍한 놈들, 너희보다 차라리 소아마비에 정신장애까지 있는 성배가 더 강건한 인간이다.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려고 들다니, 사이비종교 교주도 너희보단 교묘하겠다. 쓰레기들! 그러는 네 부모는 어느 똥둣간에서 조건 없는 사랑으로 키웠길래 이런 병신을 만들어놨냐고, 대장에게 난 외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저주받을 놈들! 음악이 끊임없이 울려대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거짓만 토하는 그 가사가 계속 내 뇌를 뒤범벅에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이다. 염병, 난 어느새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이제 발작하듯이 웃기 시작해 그 작년 영어시간에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생들 한복판에서 폐렴 환자가 기침하는 것 같이 멈출 줄 모르고 웃으면서,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충혈된 눈으로 그 자리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만 쏘아보는 그 상황 말이다.
 조교들이 날 일으켜 강당에서 데리고 나갔다. 차라리 목을 조르고 패지 그랬어, 우상숭배자들, 이단자들, 최면가들, 광신도들! 그 뒤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저주받을 놈들.
 이미 전교에서 내 별명은 ‘3학년 1반의 정신병자’였는데 너희 때문에 인상이 더 나빠졌어. 많은 친구, 혹은 친구가 될 법한 놈들이 떠나갔고. 아아, 요즘 학교도 그런 행사 하나?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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