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결과

기록/생각 2023. 2. 4. 03:38 |

 나는 쉽게 내가 쓰는 작품에 동화된다. 문제는 내 작품의 대부분이 스스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가공물이라는 점이다. 내가 갖고 있는 기억들 중 인위적으로 덮어 씌워지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것은 기억의 문제만이 아니다. 나는 내가 쓰는 소설과 너무 밀접한 나머지 작품을 쓰는 내내, 계속하여 자기자신을 가공하고 갱신한다. 끔찍하게 우울한 이야기를 쓸 때 나는 더 많은 항우울제를 삼키게 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 이야기를 쓸 때 나는 바보 같은 보헤미안이 된다. 나에게는 확고한 자기자신이 없다. 그로 인해 상상력은 현실의 껍질 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개념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은 제외하고, 오로지 감각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이다. 없다. 내게는 명백한 호오가 없다. 쾌락과 고통도 생물적인 반응의 영역에 머무를 뿐, 좋고 싫다는 가치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나라는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고 글로 쓰는 일을 그만둔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그간 머릿속은 점점 탁해졌다. 과거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미래는 확률과 수치조차도 되지 못한다. 지금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생명력은 힘이 세다는 사실 뿐이다. 내가 살고자 하지 않아도 생명은 엄청난 완력으로 살고자 한다. 그렇게 질질 끌려다니는 듯이 살아왔다. 혹은 살고있다. 무언가 전환점이나 원동력이 될만한 것을 찾아야한다고, 다만 염불 읊듯이 멍하니 생각하고 있다.

 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왔다. 담배나 약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알고 있고 버릇처럼 실행해왔다. 결국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십 수년간 방치되어있던 이상하고 참담한 현실이다.

 분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의 불합리한 방식 덕분에 나는 대단한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야겠다. 거대한 분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밖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겁이 많은 개는 짖기라도 한다는데, 나는 짖는 것조차 두려워 내 모든 힘을 스스로의 숨통을 눌러놓는데 쓰고 있다. 원한이야 많지만 그것을 위해서 행동할만큼 나는 자신을 존중하거나 살피지 않는다.

 계속 밤에 깨어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낮이 두렵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두렵다. 기피하고 싶고, 그들로부터 격리되고 싶다.

 글을 쓰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다른 삶의 방식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부 실이 끊어졌다. 이 기묘한 길에서 벗어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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