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2)
나는 이불을 개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위에 이불을 갠다. 나는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3년 전 나는 한가지 목표를 정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갠다는 목표 말이다. 그러나 목표를 정하기만 했을 뿐, 2년이 넘어가도록 나는 단 한 번도 이불을 갠 일이 없었다. 이불은 항상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겹겹이 파도치는 그 곡선 주변으로 소주병과 맥주병 따위가 조화롭게 굴러다녔다. 곳곳에 책과 음반 따위가 무질서하게 쌓여있었고 무언가를 무너트리지 않고 걸으려면 몹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방뿐만이 아니라 온 집안이 그런 꼴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더라? 나는 책을 쓰기도 했고 대학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했고 가끔은 조각을 깎기도 했다. 돈이 필요하면 아무런 경력도 되지 못할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그마저도 싫증이 나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그들이 다시는 내 전화를 받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해치지 않기 위해 술을 마셨다. 길을 걸을 때 마주치는 통행인의 눈동자를 살인마의 눈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 은행에 들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접수원 앞에서 굳어버리지 않기 위해, 전철에 탔을 때 한 정거장마다 뛰어내려 숨을 몰아쉬지 않기 위해 말이다. 굳이 술일 필요는 없었다. 대마든 LSD든 버섯이든 상관없었고, 실제로 시험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이 교도소에 들어가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술은 합법이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아무튼 나는 술을 마셨다. 책을 쓸 때도 악기를 연주할 때도 조각을 깎을 때도, 심지어는 일을 하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는 와중에도 술을 마셨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불조차 갤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런 사실을 자각할 때면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또 술을 마시고 나면 절망은 거짓말처럼,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곳에 얼마나 많은 절망이 쌓여있을지, 나는 짐작하려고 시도해본 일도 없다.

 그리고 세상일은 이치에 맞도록 돌아간다. 나는 매일 술에 취해서 집안을 돌아다녔고 내 발걸음 소리가 너무 크다는 아래층 세입자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툼을 벌였다. 결국에는 그들이 어딘가에 신고를 한 모양이다. 무슨 복지 센터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집에 찾아왔다. 그들은 들여 보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안될 것도 없었다.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 내 집에 들어왔고 그들이 분명히 무슨 긴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당시에 난 이미 소주를 네 병이나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들이 내게 재활원에 입원하는 것을 추천했다는 점이다. 그때 나는 나에게 얼마 정도의 돈이 있는지 헤아려보았다.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고, 그런 식의 삶이 벌써 수년간 이어져 온 상태였다. 나는 그들에게 입원씩이나 할 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기금’이라는 것에 대해 운운했다. 어쨌거나 내가 얼마간 무료로―그들이 지원사업이라느니 뭐가 어떻다느니 하고 말을 했는데― 재활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 그것이 대강 1년 전인 것 같다. 아마도 그렇다.

 그렇게 하여 나는 지금 침대 위에 이불을 갠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세안을 하고, 이를 닦고, 환자들이 모이는 식당으로 간다. 나는 배식을 받은 후 평소처럼 최 씨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자리로 향했다. 미라처럼 삐쩍 마르고 볼이 움푹 팬 이 영감님은 한쪽 발을 관 안에 들여놓은 정도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쓰러져 이승을 떠날 것 같이 생겼으나, 67세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마른 사람들은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다들 밥 먹듯이 술만 마셔왔을 뿐, 안주나 음식에는 제대로 손댄 적도 없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아마 내 얼굴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스스로 판단할 만한 것이 아니기에 나는 남들에게 내가 어떤 얼굴로 보이는지 알지 못한다.

 최 씨 할아버지는 배식판을 응시한 채 젓가락으로 애먼 미역국만 계속 찔러대고 있었다. 탁, 탁, 하는 금속성의 소음이 반복적으로 울렸다. 주변에 앉은 환자들이 눈치를 주고 있었으나 영감님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안 드세요? 내가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영감님은 나를 힐끗 보더니, 대답도 하지 않고 여전히 젓가락으로 배식판을 찔러댈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무슨 날인데요.

 손주 생일이야, 다섯 번째 생일.

 갇혀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의사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아들내미가 오지 말라더라.

 이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은 너무 뻔했다. 아니, 그보다도 이 좁은 건물 안에서 부대끼며 사는 환자들은 서로의 사정을 훤히 다 알고 있다. 영감님은 의사 동의를 구해 손주 생일잔치에 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틀림없이 술에 손을 댈 것이다. 처음에는 맥주나 막걸리 한 잔으로 시작하겠지. 잔칫날이니 딱 한 잔만 하고 그만두자고 말이다. 그리고 한 잔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다. 두 잔까지는 괜찮겠지. 그러면 이제 6개월간의 치료와 상담이 전부 뒤집어 엎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의사도, 영감님의 아들내미도 아니다. 영감님 본인이다.

 그래,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그것이 나에게는 사실 축복 같은 일이었다. 이 건물 안에서는 그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고, 무슨 일을 할지 예측불허한 공포스러운 타인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에서 술을 안 마시고도 다소간 제정신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난동을 피우거나 금단증상 때문에 여기저기 구토를 해대는 신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상정한 범위 내에 있다. 그렇다면 무어 두려울 일이, 두려울 사람이 있겠는가.

 식사를 하고 나서 약을 받아 삼키고 나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세상에서 온갖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약간 소리 내어 웃었다. 바깥세상은 늘 그렇지. 너무 넓기 때문이야. 더러는 너무 많은 사람이 밀집해있기 때문이고. 온 세상에 격리병동을 만들어 사람들이 생활하게 하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즐거운 몽상에 빠졌다. 어차피 모두가 미치광이라면……. 그러고 있을 때에 남자 간호사가 내게 다가왔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되기 한 시간 전이었다.

 면회입니다.

 그래요, 요새 자주 오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누가 면회를 왔을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자 간호사를 따라 면회실로 향했다. 이곳은 바깥세상과 ‘안’쪽 세상의 완충지 같은 곳이다. 흔히 상상하는 방탄 유리벽이나 감시인 같은 것은 없다. 교도소도 아니고. 그저 테이블이 대여섯 개 놓여있고, 테이블마다 서너 개씩 의자가 있는 공간이다. 창문가에 있는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내 동생이었다. 10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 덕분에 그는 철이 들 무렵부터 내가 술에 절어있는 모습만 보아왔다. 열 살짜리 꼬맹이가 스무 살이나 되는 친형이 매일 술에 꼴아 가구를 부수거나 가족들과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왔다고 생각해보라. 동생은 자기 인생에서 나를 완전히 지워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나를 형으로 대했다. 내게 동생은 내가 술 때문에 망쳐버리지 않은 유일한 인간관계였다. 그래서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마지막으로 망칠 것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잘 지냈어? 내가 물었다.

 나는 잘 지냈지, 형은 어때.

 술 안 마신 지 벌써 일 년쯤 된 것 같은데.

 잘됐네, 잘됐어.

 오늘은 무슨 일로 왔어.

 이때 동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순간 아침 식사 때 보았던 최 씨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반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 말에 결혼해 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 남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얘가 지금 몇 살이더라. 하기야 벌써 삼십이 넘었지.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내게는 아직도 젖살이 덜 빠진 꼬맹이 모습부터 생각이 나지만 이미 한참도 전부터 어엿한 성인인 것이다. 그런데 왜인지, 무슨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특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잘 알 수 없었다. 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면 뭐라고 말해줘야 하지? 축하한다고 하나?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 아닌가. 그보다도 이 녀석은 왜 말하기 전에 뜸을 들였지?

 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것도 뻔한 일이다. 바깥세상에서 멀쩡히 살아가는 동생에게 나는 억지로 짊어지게 된 짐 같은 것이다. 더군다나 결혼을 한다지 않는가. 배우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처가도 생기기 마련일 것이고, 내 존재는 무엇 하나 동생에게 도움이 되는 면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까지고 여기에 있는 수밖에.

 잘됐네. 나는 웃었다.

 동생도 웃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 밤 약을 먹고 잠든 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또 이불을 개야지. 침대 위에 칼같이 이불을 개어놓고 스스로 만족스러워해야지. 내가 이 정도 일을 스스로의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성취감을 느껴야지.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말이다. 우리 형제는 마주 보면서 웃었고, 내 입안에서 아주 오랜만에 소주의 씁쓸하고 불쾌한 단맛이 감돌았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Posted by Lim_
:

서로,

글/시 2024. 4. 4. 17:27 |

서로,


 이게 시냐?
 이게 시냐고
 시라고 할만한 형태가
 남아있는 게 없잖아.

 그리고
 니가 인간이긴 하냐?
 인간이라고 부를 만한 게
 생긴 꼬라지 밖에 없잖아.

 이놈 이거 계속 사람 신경 긁어대네

 이 거울
 내 것도 아니라서
 깨트리면 물어내야 하는데.

Posted by Lim_
:

그땐 그랬지라는 말 하지 맙시다


 그곳이 네 번째 술집이었을 것이다
 정신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고
 문을 열자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났고
 손님은 죄다 흑인이었다
 대충 열 명 정도

 더 있었을 수도 있고.

 바테이블에 앉아 럼주를 시켰다
 바텐더도 흑인이었다
 직후 흑인 남녀가 내 옆자리에 앉았고
 술을 시켰다

 바텐더는 남녀에게 술을 가져다주었는데
 내 술은 없었다

 이봐요
 내 술은?
 아, 금방
 가져올게요

 곧
 옆자리 남녀에게 두 번째 잔이 서빙되었다
 여전히 내 술은
 없고.

 미쳤던 게지.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야 이 애미랑 씹질할 깜둥이 새끼들아
 라고
 그네들 말로 외쳤다

 뭔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나는 가게 뒤쪽 쓰레기장에 누워있었고
 어디가 아프지는 않았다

 달도 별도 없는 밤하늘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술이나 먹으러 가기로 했다
 술기운 떨어진다고 몸에서 싸이렌 울리더라.

 좁아터진 골목 거리
 네온싸인 켜있고 술집이면 그냥
 그냥 직입
 직입 했는데

 들어오지 마세요
 예?
 술 안 팝니다
 예?
 출입금지라고 저번 주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술 안 팔아요?
 들어오면 경찰 부를 테니 빨리 나가세요
 그럼 뭐
 별 수 없지
 말 잘 듣는 모범 시민은 야간버스 타고 집에나 가야지

 아침도 지나고, 정오
 하여간에 만사에
 도움이 안 되는 고깃덩어리, 온몸이 더럽게
 빌어먹게 아프고
 얼굴은 왜 이래
 강판에다 간 것 마냥

 히,
 희,
 희희,

 집안은 썰렁하고
 부엌에는 아침이 차려져 있고
 밥 집어먹다 창문을 보면
 어제처럼, 엊그제처럼, 늘상 그랬던
 것처럼
 구두들은 결연히 전진한다

 몸은 변기를 붙잡고 뭔지도 잘 모를
 어떤
 중요한, 부수적인, 무거운, 한없이 가벼운
 것을……

 에이씨
 몰라 숙취 때문에 오바이트 했다.

 이게 아마
 5년 전인가 6년 전인가
 백 년 전인가
 억겁 전인가
 내 기억이 맞기는 한가

 어쨌거나
 그 동네 아직도 딸랑딸랑
 현관 종소리 딸랑딸랑
 끝이 없다던데

 출입금지자 목록에 내 모습 올려놓은
 그 절박하던 사장들은
 어쩌면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절박하게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거기다 둥지를 틀겠어
 하기사 거기
 끝 간 데 없이 헤매다 보면
 뭐 반짝거리는 게 많기는 하다

 그래,
 빛나는 건 아니고
 반짝거리는 거

 두들겨 맞을 때 안구 속에서 번쩍이는
 섬광 같은
 대충 그런 거

 그 술집도 이젠
 없다, 없을 것이다
 없겠지
 아마.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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