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253건

  1. 2020.12.06 두개골 한 겹 안팎에서
  2. 2020.11.21 그곳에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3. 2020.11.12 새벽 2시, 도봉로 130길
  4. 2020.01.29 과거를 생각하며
  5. 2019.12.28 태양이 얼어붙어서 1
  6. 2019.12.25 겨울안개
  7. 2019.12.20 암막 같은 희망
  8. 2019.12.17 꽃봉오리 속의 지혜
  9. 2019.12.14
  10. 2019.12.11 질식의 땅
  11. 2019.12.10 불야성
  12. 2019.12.09 無名 1
  13. 2019.12.07 펜을 문 짐승
  14. 2019.12.06 부정否定의 시 1
  15. 2019.12.03 첫눈 1
  16. 2019.12.02 몇 가지 겨울
  17. 2019.11.27 나의 어리석음과
  18. 2019.11.25 도심, 초겨울
  19. 2019.11.21 알코올의 밤
  20. 2019.11.17 늑대의 시
  21. 2019.11.14 가을의 울음소리
  22. 2019.11.14 연초에 걸렸던 결핵
  23. 2019.11.11 짐승의 노래
  24. 2019.11.06 수인囚人의 고백
  25. 2019.11.06 새벽꿈
  26. 2019.11.05 바람 일 때 1
  27. 2019.11.05 밤을 그리는 새벽 1
  28. 2019.11.04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1
  29. 2019.11.04 십대 시절 1
  30. 2019.11.02 사슴의 노래

두개골 한 겹 안팎에서


너는 고함을 지르고 있다
너는 그와 드잡이질을 한다
그리고 너는 앉아서
천공에 모독의 함성을 지른다
저쪽의 너는
얼굴을 부여잡고 공포에 웅크린다
구석에서 너는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읊조린다
너는 드러누워
자신의 심장을 겨냥 중이다
그리고 장님인 너는
어디에도 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너희들의 땅에서는
만개한 꽃에 서리가 내리고
담뱃잎과 버섯을 태운 연기가 앞을 가리니

나는 하얀 알약
너희들의 영혼을 빼앗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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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피 대신 치기가 혈관에 흐를 때는
네온사인만 켜지면 달려나갔지
빨간 십자가 지상에 우글대면 달려나갔지
중랑천이 빛나는 걸 보려고 뛰었지

징검다리에 말뚝처럼 서서
물의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와
가로등 빛이 반짝이는 수면에 홀려있노라면
세상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

바보 같아…… 하천은
함성을 지르는 일도 없고
대답해줄 것 같은 반투명한 입술은
조롱하고 비웃는 짓뿐

핏줄에선 치기와 함께
혈액도 빠져나간 듯
하천 한복판 물빛이 비추는 얼굴은
분명 빈혈 환자 같을 터다

사람들은 세련된 스포츠웨어에
이어폰을 꽂고 기계로 심박수를 세고
물이야 흐르든지 말든지

얼굴 찾는 일도 이제는 그저
이끼를 씹는 맛이라
시내 쪽이 빛으로 불타는 도시의 야경에

흐르는 물에 쓴 침을 뱉고,
지갑에 든 돈으로는 담배 아니면 막걸리구나
기적은 없다,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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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도봉로 130길

글/시 2020. 11. 12. 22:51 |

새벽 2시, 도봉로 130길


불 꺼진 간판 아래
나는 장대처럼 서 있는 거다
목욕탕 굴뚝처럼 연기 뿜으며
네가 있을 자리를 더듬어보는 거다
그러면 구름에 가린 달처럼
머리 위 불 켜진 창문에서
너는 늙은 목소리로 흐느끼는 거다
그리고 너는 캄캄한 연립주택 사이
놀이터 저편에서 비명 지르는 거다
아직도 흐느끼는 너는
골목 너머 다투고 있는 젊은 연인인 거다
맹렬하게 타오르며
네 남자친구에게 따지고 있는 거다
내가 네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로 보이냐고
가스버너 불꽃같이 쏘아붙이는 거다
그러면 나는 몰래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거다

머리 위에서 너는 왜 울지, 하고
희희낙락 연기에 잠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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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생각하며

글/시 2020. 1. 29. 02:49 |

과거를 생각하며


밤거리 그림자로 웅성거리고
생명의 기척은 없다, 나는
앙상한 몸을 비척대며
위악스럽게 걷고

그러니까 종말을 망상하는 것이다
가로수의 그림자에도 놀라며
내가 인간에게 저질렀던, 저지를 수
있었던 수치들에 놀라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죄스럽기만 했던
패악뿐인 삶이었던
그런 것들을 너무 일찍 알아차린 것이다

연신 줄담배를 물어도 풀릴 리 없는
죄악의 실타래는 내 숨까지 옭아매
앞으로 한 발짝 떼는 일조차
더 깊은 죄악일 듯 싶어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이 멸망한 밤에
종말이 오지는 않으려나, 어린아이 같은
죄를 뒤집어쓴 어린아이 같은
꿈꿀 수도 없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해가 뜨고
그때까지는, 그림자들에게 사죄하고
또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갇힌 나는 창문을 두려워하며

햇빛 찬란한 겨울에 죽음을 그려보고
거기에 꽃이나 피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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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얼어붙어서

글/시 2019. 12. 28. 14:13 |

태양이 얼어붙어서

 

 

사람이 불행에 잡아먹혀서

     존재는 슬픔밖에 피우지 못하고

겨울하늘이 연탄재 색깔이어서

     폐부는 잿빛으로 썩어가고

 

믿었던 사랑이 기만이어서

     절벽 끝에서 다리를 내밀기도 하고

여지도 없이 희망이 죽어가서

     실링 째 떨어지는 올가미를 바라보고

 

그러니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다

생각하자면, 얼마나 많은 불행인지

행성 구석구석 들어찬 불행인지

담배를 뻐끔대며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혈액이 분노로 들끓던 시기도 가고

단도로 자기 심장 파내던 시기도 가는 것이다

단지 조용히 앉아 생각하노라면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존재의 무서운 굴레인 것이다

 

아무 정도 없이 피었다 말라가는

그런 나무처럼 되고 싶다고 되뇌일 때

나 혼자 나무가 되어 피었다 말라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슬픔은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 사람들……

고통의 바다에서 솟아올라 허우적대다

결국엔 익사해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스스로 사랑도 없었던 일에 자책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앉아 있다가

구원은 어디서 오나, 그러나 결코 밖에서 오진

않는 것이다, 밖에서 올 리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그런 것이다

 

태양이 얼어붙어서

     빙하기에 불을 때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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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안개

글/시 2019. 12. 25. 14:31 |

겨울안개


밤이 겨울안개로 가득 차면
나는 희희낙락하여 오로지
해가 결코 뜨지 않을 줄로만 안다

시각은 쓸모가 없고, 더욱이
내딛는 발도 절벽 끄트머리를 걷는 듯
내 오감은 불확실의 포로가 된다

그런데 왜 이리도 기쁜 것인지
어디선가 위협적으로 산짐승 울고
이런 밤에, 나는 밟혀 죽은 독사를 기억한다

어둠과 안개가 먹어치운 다리를
쭉쭉 내뻗고, 한 발짝만 잘못 딛었다간
그래, 그 독사처럼 길을 잃고
단숨에 죽어버릴 것이다

보이는 것은 없고, 안개 위엔 먹구름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희희낙락한다
소리도 모조리 죽었어, 나는 이제
혼돈과 비실재 속에서 방황한다

내가 볼 수 없을 때 세계가 어떻게
요동치고 진동하며 천변만화하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코 알 도리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멍청한 다리를 쭉 뻗고!

땅 밑으로의 추락사를 바라는가?
아니면 차라리 내 영혼이 추락사할 것인가?
아니야,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세계가 형체 없어지는 일에 기쁜 것이다

고로 나도 형체 따위는 없고
겨울안개 속에서 내 몸뚱어리는
안의비설신의도 안개에 두들겨 맞아 죽었다
그러므로, 그런 고로

축축한 어둠 속에서 비실재하는 다리만 쭉쭉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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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 같은 희망

글/시 2019. 12. 20. 22:02 |

암막 같은 희망


새까만 하늘의 별들은
빛나는지 빛나지 않는지
고라니들은 모습 숨긴 채 뛰어다니고
인간의 힘은 언제나 불행이었다

자신의 불행이든 타인의 불행이든
사람은 비극에서야 어지러이
빛을 품는데
그러나 도대체 어째서?

저 멀리 도시에서는 분명
오늘밤도 그 비극에 취한 걸음들이
길가에 떨어진 동전을 줍듯
삶의 파편들을 주워 모으고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몹시도 슬프고
나 역시 그 속에 있었고
어둠은 물러날 줄을 모르고
모두가 그 안에서 맴돌고

그러다가도 너의 창백한 팔을 보고
나는 산길을 올랐던 것이다
그러면 너는 온화한 웃음을 보이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그러나 동전 줍듯이 모아 만든 빛들도
시간에 따라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절벽 위에서 죽음을 결심했던 마음도
한낱 망념으로 화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때 그 산에 있지 않고
여전히 수풀 속에서 연기를 뿜지만
너와 함께 있지는 않은 것이다
너의 창백한 팔도 어디론가, 가버렸고

불행을 곱씹다가 홀연히
빛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먹먹한 마음으로, 인간마저 떨치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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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 속의 지혜

글/시 2019. 12. 17. 22:37 |

꽃봉오리 속의 지혜


꽃봉오리 안에 쓰러지듯이
이 꽃의 색깔을 나는 모르는구나
이곳은 너무 어둡고 답답한 동시에
사실은 평생을 여기서 살아왔다

꽃봉오리 안에도 꽃들은 있어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욕망들
그것의 본질도 모르고
하나씩 따 내 입안에 넣는다

이런 것들은 모조리 후회로 밖에는
남지 않아……

한때 상습 자살미수자가
<부끄러운 생을 살아왔습니다>라고, 그렇게
그렇게 말했지, 그 자는 분명
자신이 수치에 발버둥 칠 것을 알고도 꽃을 먹었으리

필요한 것은 분명히 지혜다
꽃을 먹든, 먹지 않든……중요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 지혜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지금, 꽃을 먹기를 멈춘 나에게도

꽃의 본질을 알고, 먹거나 먹지 않고
그렇다면 그것은 위대함으로 이어지겠지
후회하거나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실상 다 무지의 결과이니

그렇다면 그때, 어느 때가 됐든, 어떤 색깔로 피든
내가 쓰러져있는 꽃봉오리도 산산조각으로 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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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시 2019. 12. 14. 23:09 |




어리석단 말이다, 인간은, 나는……

평생을 희론으로 살아온 나는
어디로 가려고 했나, 어디로?
한 주먹의 이 알약들은
어디로 가느냔 말이다, 어디로

해가 뜨지도 않는 땅이다
그러나 태양도 달도 물리치고
패배하는 일 없이, 오로지 나는
영혼의 수액만을 찾아 마시려고 했다

오로지 온화하게 웃으며
화내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내 가죽을 전부 벗기는 일이 있어도
결코 즐거워하는 일도 없이, 그러나

어리석단 말이다, 인간은, 나는

뇌수에 갇힌 내 무언가
나침반도 없이 절규하고, 통곡하고
무언가 날 마주하고 있어, 무언가
아주 새까만 장막 같은 것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모든
내 환영들을 송두리째 파괴할
그런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죽음조차 기만이 되었다

가지고, 탐하고, 사랑하고
그런 것은 이제 됐다, 이 겨울
아름다움조차 무언가를 방해하고
나는 비존재에의 열망에 허덕이고

空으로, 空으로, 무조건
마치 돌진하는 창병처럼, 단숨에!
그러나 무언가가 날카롭게 조소하고 있어
두개골 속에서, 감옥의 간수처럼

왜 감각하지?……

어리석단 말이다,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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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의 땅

글/시 2019. 12. 11. 12:43 |

질식의 땅


대기에 스모그 끼어서
창밖은 하얗게 어둡습니다
어디선가 중기의 고함소리 들려오고
뻐끔뻐끔 담배연기만 두개골에 들어찹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로 창 닫힌 건물
여기는 어디인가 의문할 것도 없이
담뱃재 떨어지는 자리에 나 있습니다

세상이 스모그 먹어서
낮인지 밤인지, 아니 그런 것이
중요하기나 한 땅인가
달 대신 가로등 뜨는 골목에

눈도 내리지 않는 이상한 겨울
갈퀴 같은 바람은 하얀 먼지 긁어내고
나는 그것을 높이서 내려다보다가
창백한 하늘에 어찔하고, 난간에 스러집니다

―알제리, 알제리!……―
그만 둬, 나는,
가본 적도 없는 땅에 환상을 심지는 않을 터다

녹은 황금 같은 햇살도
드넓은 사막 파랗게 얼려버리는 달도
이미 내 머릿속에서 한 번의 생각으로 떴다가 졌다

난간을 기어오르며 입에는 담배 물고
뭐어야, 이미 죽은 생선과 같다
기름때 낀 창문 너머는 지독히 말세로다

그러나 그러나 멈출 수도 없지요
타는 담배는 끝까지 다 타야하고, 삶도
담뱃잎 싸놓은 육신처럼 다 타버려야 하고
세상이 어떤 꼴이든……

하하! 나는 위악으로 웃고는
해도 달도 없는 땅에서 깡통 찾으러 가는데

세상이 스모그 듬뿍 먹어서
행성이 도는 일조차 잊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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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글/시 2019. 12. 10. 20:09 |

불야성


산에서 내려온 도시의 밤은
그야말로 불야성, 밤이 찾아오질 않는구나

명성이니 자본이니 그런 것은
뒤집히는 낙엽 같아 논할 것도 없으나
명성에 대해서니 자본에 대해서니
더욱이 모습만 바꾸는 꿈이어 나는 슬픈 마음이다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취중에 토하는 얘기는 불법에 대한 희론이다

세상이라는 착각에서 떠받들 것
가지게 될 것 버리게 될 것
모두 한번 생각하고 잊히게 되는 것이니
거품 덩어리 속에서 금강석을 찾는가

―나는 취하여 세상을 보았다
기쁨을 찾느라 발광하는 사람들은
어둠 내리지 않는 밤에서 바삐 달린다

그만, 그만! 그런 괴로움은
어리석음은 무지는 치워둬
불붙은 눈으로 뛰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감정도 없는 슬픔에 젖는다

이 도시는 도대체 누가 지었는지
빛은 사방에서, 그러나 깨끗할 것도 없는 빛
산에서 보았던 맑은 달은 파괴적이었다
사방팔방의 허상을 온통 부수었다

불야성의 도시에서, 나는 꿈도 꾸지 않고
그러나 꿈꾸는 자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그들은 어디로 가려는지도 모르고
냅다 내달리며 어딘가로 추락한다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은 귀가 없어
절벽에서 팔을 뻗는 내 얘기도 듣지 못하는 구나
도대체 얼마나 내달리게 될지
57억 6천만년이나 허상을 달릴 셈이냐

그만, 그만! 세상을 바꾸려는 일은 그만두고
이 착각 벗어나는 일이나 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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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

글/시 2019. 12. 9. 12:17 |

無名


초겨울의 냉기가 산을 뒤덮고 하늘을 뒤덮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와 같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시내에서 사람들은
몸을 싸매고 바삐 어딘가로 걸어간다

한 몸 편할 곳을 찾아, 추위를 피해 달려
어딘가로 어딘가로 바삐 가려고 한다

세상은 거대한 착각이니, 여기서
세상에게 이름을 붙인 채 살면
괴로움이 끊어질 일이나 있을까요

몇 번이나 죽고자 하여, 나
실은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완전무결한 비존재가 되려했습니다

바람 불면 일어나는 파도가
아아, 나는 파도로구나, 하는 순간
천둥치는 하늘과 고해에서 영겁을 뒤엉깁니다

그러니 나, 무한한 바다로 다시
파도에게서 이름을 지우고, 스러지는
심해의 밑바닥으로 형상도 없이 가고 싶었습니다

뇌 속에 갇힌 누군가를 꺼내려고
권총 한 정 꺼내 구멍을 낸다 하더라도
내가 空으로 돌아가지도 않겠지요, 죽음도 미신인걸!……

알고 보니, 흙탕물 튀기며 살려고 했던 발버둥도
죽고자 하여 약병과 밧줄 쥐던 발버둥과
별로 다를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내가 이름도 없는 곳으로
저 멀리,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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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문 짐승

글/시 2019. 12. 7. 09:26 |

펜을 문 짐승


딱히 겨울하늘이 파랗게 얼어붙었다 한들
그것에 대해 무어 감상이 있지도 않지

마른 숲속에서 도망치는 고라니와 마주쳤다 한들
내게 무어 놀란 가슴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세상은 얼어가고 나도 얼어가고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에 쥔
담배도 이제는 무슨 맛인지
녹슨 울타리 같은 마음으로 궁금해 하지

감성, 감성! 그렇게도 부르짖는
그것이 내게 있기나 했던가
지난여름 비 오는 철교 위에서
나 강물이 얼마나 차가울지 궁금했었지

―이제 그만 쉬어
문학도 예술도 인생의 끝에
그리 중요한 것은 되지 못할 거야
그런 말들에 나는 심장을 난도질당하고

옳은 말이야, 옳은 말이겠지만! 그러나
차가운 바람에 손가락 저릴 때마다
나는 비참한 심상으로
한 가지 싯구를 떠올리고야 말아

저 능선 위의 절벽은 어떤 죽음을
내 정신과 영혼에게 드러내줄까?
수세미를 씹듯이 담배를 물고
나는 이상하고 추운 탐미에 홀려있네

……이제 그만 쉬어
그 말에도, 고통만 읊조리며
펜을 찾아 돌아가는 슬픈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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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否定의 시

글/시 2019. 12. 6. 15:20 |

부정否定의 시


내 삶은 사유가 폭풍우치는
끝나지 않는 밤 같았으나
누군가 내 껍질의 가느다란 실마리를
강하게 잡아당기고야 말았습니다

시인들의 노래가 어디로 가는지
나의 정신이 미치광이처럼 따라갔으나
끝에는 공동묘지, 더하여
도무지 죽을 줄을 모르는 시체들

그리하여 저의 껍질을 더듬어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회의를 계속하고
죽어버릴까? 이런 육신으로는
영혼에서 퍼 올린 자아조차 가려지는데

그러나 누군가가 분명히
내 실타래 끝의 실마리를 잡아당겼고……
육신은 헐거워지기도 하는 법이지요
뇌수조차 묵직한 고기였던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햇빛은 더욱 선명하기에
겨울에 골몰하여―아, 그러나
광풍 같던 사유와 사고는 이미 가라앉고
나는 적적히 뭔가를 회의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그만한 것도 없지요
옛날부터 깜깜했던 나의 시각은
떠올려진 망념들이 미친 말馬들처럼 지나가는 일로
그리도 깜깜했던 것입니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팔짱을 끼고
증오와 광란만 허용하던 나의 삶은
죽음에 이를 때는 미풍도 그치려나요
밤에도 햇빛은 지평선 너머서 빛나니

그래요, 그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폭풍우와 지진을 집으로 삼고
살갗이 전부 찢겨나가는 것을 기대하던, 어린아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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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글/시 2019. 12. 3. 19:44 |

첫눈


눈 내리면 소리가 사라진다고들 하지
사실 그저 하늘과 대지가
눈 내리는 소리에 뒤덮일 뿐이야

자세히 들어보면 참도 소란스럽지
부스럭 차르륵 사방을 치며
눈이란 놈은 그렇게도 주장을 해

눈 내린다고 소리들이 어디로 가지도 않지
그저 푸르고 거뭇거뭇하던 색깔들이
하얀 소음으로 마구 칠해질 뿐이야

모두가 잠을 잔다는 계절에
소란스럽기도 하지, 마치
세상이 곧 자신 되기라도 하듯
이름도 없는 색깔들 떨어지지

눈이 그치면 밤이 내리고
그러나 구름들은 물러나지도 않아
달은 있다가 없다가 한다
비행기 소리에 올려다본 하늘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달을 보다가
담뱃갑에 손을 베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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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겨울

글/시 2019. 12. 2. 13:10 |

몇 가지 겨울

 

 

빛이 쏟아져 내리는 우박 되는 계절에

나 마른 잎들을 밟으며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네

그러나 희망도 없이

 

노란 나비들 날던 때는 가고

이젠 밥 먹을 때조차 벌벌 떠는

파리들이 끊임없이 들러붙어 오듯이

망념은 계속, 어디서 떠올라 오나

 

어디선가 빛이 깜빡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전신주 위에서 겨울이 빛나는 소리인가

그러나 나 쳐다보지도 않고

하얀 입김에 기뻐하며 그 소리 들었네

 

어느새 겨울

굳이 풍광을 언어화할 필요는 없다

시인들의 일이란 진절머리 나는 것이지

 

진절머리 내면서 한 겨울에 나비를 찾고

그러니 그런 것들은 증오되고……

하지만 달리 고백할 것도 없다

 

희망 놓고, 기대 놓고, 이러이러 하리라는 마음도 놓고

그 사람 눈동자는 성자 같았지

어디선가 보았던 한 여름의 활엽수림 같았지

 

나 활엽수림 앞에서 계곡에 거꾸러지고, 옷이 젖지 않길 기도하며

끝내 놓지 않던 담배꽁초 연기가 내 눈에 스며들었지

이 눈이 다시 밝아지는 때는 언제? 언제냔 말이야?

 

내가 누굴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앙드레 지드는

어떻게 죽었나? 그의 말대로

지상의 양식 다 취하고 희망 없이 죽었나?성자가 될 수 있었나?

 

나 한번 죽었으나 완전히 죽지 못했다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의 이야기 몇 번이고 다 읽었어도

정혜쌍수를 쥐지 못했다, 세월은 막히지도 않고 흘러가고!

 

그래, 지금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겨울 무렵이면 사방이 깜깜했고

어머니는 이불을 덮고 있었지…… 나는

 

나는 반짝거리는 어둔 공기 속

뭔지도 모를 불안에 멀뚱히 서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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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리석음과

글/시 2019. 11. 27. 09:33 |

나의 어리석음과


하늘색 구름이 남아있는 것인지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나의 어리석음은
만일 내게 밝은 본성이 있다면
달을 뒤덮은 구름 같은 것이지

나의 어리석음은
구름 낀 야밤 파도 속에서
달을 건지려고 철벅거리는 어부지

나의 어리석음에
돌을 모으는 보석상인처럼 나는 십년을
바깥의 지식만 주워 모으며 행복할 줄 알았지

나의 어리석음에
나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고, 방안 가득한 무덤
그러나 어느새 칼을 쥔 채 내 가슴을 조준하게 되었지

지식이 잃어버릴 수 없는 재산이라고
누가 말했지? 그도 이미 죽어
잃어버렸을 것이다, 대답할 입술도 썩어

행복을 찾으려 했던 일부터 어리석었지
외로움 잊으려 발광했던 일도
나 그저 나를 점점 두껍게 칠했을 뿐이지

―이제 점점 겨울바람도 불어
생선가시 같은 나무들, 낙엽도 없네
마을 쪽에선 아지랑이 같은 생활음
찾던 것은 행복조차 아니었다

이상한 눈을 한 채 태어나
내 본능은 그저 더 많은 지식을
썩고 벌레먹이 될 뇌수에 맹목으로
쌓고 쌓는 것이었다, 지혜는 한 조각도 없었다

하늘색 구름이 남아있는 것인지
구름이 하늘을 덮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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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초겨울

글/시 2019. 11. 25. 18:05 |

도심, 초겨울


초겨울 바람도 날카로운데
나무들은 뼈만 앙상하다
하늘엔 구름도 뜨지 않아
죽음이 골목골목 나다닌다

새하얗게 질린 콘크리트 아래서
이런 계절이면 발광할 것 같아
행인들 텅 빈 유모차 밀고
나는 미친 손으로 뭐라도 주워 모으려

태양이 황금으로 빛나던 때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고
대지는 이제 차가운 등뼈
발골된 세상, 내가 쥔 것은 칼

이런 때면 으레 나는 어리석은 일에 미쳐
생명의 소리를 듣겠다고 시멘트에 들러붙지만
모조리 죽었다…… 물소리도 없는 도시
어디선가 결핵환자의 숨소리만 들려온다

폐쇄된 방안에나 있을 일이지
어리석은 발은 거칠게 쏘다니며
담배연기는 숨쉬기도 전에 스쳐지나가고
불안한 마음, 사방이 콘크리트다

이제 내 마음은 죽음에 닿아
그래, 평안해지고 마는 법이지―따라잡힌 발걸음
골목에서 나온 그가 오로지 내 눈 주시할 때
그래, 죽음에 닿아, 담배연기는 깊이 폐로

하늘은 마른 생선 껍데기
거대한 등뼈 위를 쏘다니다 지칠 즈음
세계는 세 가지 정도의 창백한 색깔이 있고
황혼도 없이 밤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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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 밤

글/시 2019. 11. 21. 23:43 |

알코올의 밤


알코올의과량섭취는지나간이에대한그리움을유발시킬수있다

1.

아버지와 마신 술은 연했고
아버지의 주름은 술보다 진했고
내 눈은 아버지보다도 늙었고
술병은 내 눈동자보다도 늙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새벽마다 독송과 108배로 대신한다고 했다
나는 간만에 부모를 보았다
꽉 막힌 침묵 어느새 입술에 묻었다

안주는 먹자마자 망각되고
다만 알코올만이 의식을 모르고
위장에서 신경으로 중첩된다
밤은 더욱 밤이 되어 굳은 기름처럼 변한다

누가 인류를 증오한다고 했지?
그래, 내가 그랬지, 아니야 사실은
인류가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배꽁초 버리듯이 증오하는 것이다

백탁으로 굳은 기름처럼
세상은 경화되어가고
나는 오물 같은 말을 쏟아내고
혹은 쏟아내지 않거나, 나는

도시가 멸망해가는 게 안 보여?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외치고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피하며 집으로 향하고
나는 절명하는 콜타르 멱살을 잡고

아버지, 먼저 들어가시죠, 저는
몇 개비의 담배꽁초를 이 콜타르 위에
집어던지고 짓밟아야만
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은 영령의 눈동자로
휙휙 지나가고, 휙휙 무관심하고
아아, 술인지 멸망인지에 취한 나는
친구 집의 현관문이나 걷어차고 싶다

비 내리는 계절은 멎었나?
그래도 멎었겠지, 이제 하늘에서 내리는 물은
생명의, 생명의 물이 아니야
고양이들 빗물 마시고 마비되어 죽어간다

водка! 그것의 어원이 생명의 물이야
그러나 지갑도 어느 진창에 떨어트렸고
스스로 담배연기에 질식해가면서
나는 네온사인 밑에서 꿇어앉는다

알고 보니 말이야,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아래층에 알코올중독자 부부가 이사 왔다고 했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울부짖는다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희희거렸다

도시는 콜타르 색으로 죽어가고
빗물은 포름알데히드 같아……

2.

이 옷은 네팔에서 사고
이 바지는 인도에서 샀지
그리고 난 미국남부에서 산 담배를
입술의 일부인 듯 물고 다녀

괜찮은 길이다, 이대로 가도 나쁠 것은 없다
내던져진 행성에서 내던져진 생명으로
윤리를 내던지고 도덕을 내던지고
바람에 흩어지는 담배연기처럼 가는 것도

그러나, 그럴 리가 없지, 그럼, 그럴 리가 없지
이상한 가격의 소주를 흠뻑 마시고
담배연기로 화하여 걷는 거리에도
그녀는 나타나고야말지

여긴 대륙 끝자락이야
여긴 반도의 화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네가 있을 리가 없는 곳이야
영어로는 페닌슬라라고 하는 브릿지 같은 곳이야

그러나 그녀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바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할 민족은 잿더미가 되리라”
그런 나라에서 정갈히 머리를 깎고 온 바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 나는 이미 잿더미라

아니야, 그래도 난 괜찮은 길을 걷고 있다고
내던져진 행성에서도 구원은 있으니
이번 생은 그렇다 치고, 다음 생은 괜찮겠다고
이름을 떨어트리고 산골로 들어섰으니

그러나 그녀는 왜 나타나고야 마는가?
술에 취하고 담배에 취하고 입술도 잃어버린 내게
저 단발 지나가고, 저 장신 지나가고, 저 미소 지나가고
어둠은 가로등은 형상Eidos을 섞어 혼란을 내게

그만, 그만! 이제 웃어라 시인 나부랭이야
그리움도 사치니 아무것도 망각하지 못하는 너는 웃어라
현실은 지나가기만 하는 환상이니, 너는 얼간이야
시간에 매장된 글쟁이야, 너는 담배 한 대나 더 빼물어라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살아있든 죽었든, 그러니
아냐, 나는 담배 한 대나 더 태우렵니다.

3.

그것은 참으로 괴물 같은 어둠이었어
그 속에 나는 앉아있었고
엉덩이와 다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영원히 내려가는 계단에 동화되었지
내 안경에 뭐가 묻었나?
내 영혼에 뭐가 묻었지
분노의 외침들이 고요히
눈동자를 까맣게 좀먹어갔고
마침내 무관심으로 화하여
행성의 저편에서 순결한 생명이 죽어간들
나는 지금 태우는 꽁초나 마저 태우면 그만인 걸
북인도로 갔다던 그녀는
몇 년이나 잊어버리고 있었더라
정신이 백탁해지고, 굳은 기름
잠들 때가 되었어
멸망할 때가 되었어, 사방을 뒤져
유럽을 떠도는 유령까지 붙잡았지만
후세, 나는 잠들고 싶을 뿐이다
다음 생도 다다음 생도 없이
종말의 행성에서
절멸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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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시

글/시 2019. 11. 17. 12:52 |

늑대의 시


도시에서는 더 많은 비가 내렸지
빗방울 하나마다 비치는 감금과 비극
지나가는 소나기에도
내 마음 포화되어 갇힌 늑대처럼 자기 다리 뜯었네

어둠 내리면 모두 옥상으로 갔지
담배연기에 영혼까지 뿜어지길 바라며
다들 손에는 술병 하나씩 잡고
이따금 난간 밖으로 굴러 떨어지는 친구도 있었네

골목 바닥은 너무 낮아,
영혼만큼 낮아서 그대로 동화될 듯해
달려라, 달려라 숨 못 쉴 높이까지
나 죽으면 연립빌라 옥상에 묻어줘, 티켓값 잊지 말고

비가 내렸지, 사람 마음 미쳐버리게 하는
절반은 인공의 어둠, 절반은 갈구하던 광기
빗방울을 씻어내 광기만 남길 순 없나
알코올은 너무 약해, 75도짜리 광증을 마시게 해

이 옷은 너무 답답하지
단백질, 지방, 뼈 따위로 지어놨으니
아무에게도 어울리지 않지
늑대는 늑골을 찢어 부수고 스모그 사이로 달리고 싶어

비가 내렸지, 도시에선 더 많은 비가 내렸지
하늘은 먹빛이고 도망치기엔 절호의 날씨지
아프다고 옷이 절규해, 속에서부터 찢어지고 있다고
옥상에선 친구들이 연달아 굴러 떨어져

이 행성에 사는 것들은
70억의 인간들이 아니라
70억의 갇힌 늑대들이어라
너무 오래 달을 못 봐 미쳐가는

도시에는 너무 많은 비가 내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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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울음소리

글/시 2019. 11. 14. 15:12 |

가을의 울음소리


단풍은 노랗게 죽어가네
단말마도 없이

하늘은 계속 높아져
돌아오지 않을 듯 해

사랑하는 이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나는 고개 숙이고
땅바닥 굴러다니는 자갈만
무심을 가장하며 발로 찬다

밤이 되면 또 달이 뜨겠지!
너무 맑고 청명해 투신하고픈
그런 달이 다시 뜨고 나는
투신할 방법을 찾느라 절망한다

유아아아 유아아아 유야아아아
누가 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을까
아무도 듣지는 못했겠지
애당초 울부짖을 혓바닥도 없었으니

아무도 듣지 못하게 땅을 본 채
무심한 눈동자 안에서는
유아아아 유아아아 유야아아아
채이는 자갈만 들으라고 통곡을 한다

아아,
단풍은 노랗게 죽어가네
단말마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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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걸렸던 결핵

글/시 2019. 11. 14. 07:18 |

연초에 걸렸던 결핵


마음 둘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네
소나무 가지에 담배연기는 뿜어지고
어둠은 결국 밝을 것이라

매일 아침 태양이 뜨는 걸
저주하던 시기가 있었지
화를 냈던가?
내 몸이 화에 들떴지

죽어야만 할 것 같아……
사람들은 실망하고
나는 수치에 몸부림치고
빚을 갚을 마음은 애당초 없으니

온몸의 피를 길게 빼내면
가을바람 휘몰아치는 창밖에
빛살은 내려오고
나는 갇힌 창안에 누워있겠지

왜 떠도느냐고
괴로우니까다
왜 떠도는 것에 괴로워하냐고
괴로우니까다

연초에 걸렸던 결핵이
다시금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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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노래

글/시 2019. 11. 11. 07:59 |

짐승의 노래


산중에 가을비 내리고
담배연기는 커피의 맛
쓰고 떫어, 혀에 들러붙어
분에 안 맞는 사치의 뒷맛 같구나

내 코트에는 빗방울들
껌처럼 눌어붙지
해는 구름이 가렸고,
나뭇잎이 가렸고, 내 마음이 가렸다

신기한 일이지, 담뱃불은
비 내려도 빨갛게 탄다
다만 떨어진 담뱃재
진흙으로 돌아가 회색반점이 된다

입에서 나는 커피와 담뱃진 냄새에
나는 입을 감추고
황급히 몸을 감추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내 둥지로 향한다

질질 끄는 발걸음을
가을비는 붙잡고 늘어지고
질끈 묶은 머리는 비에 번들거리며
나는 도망치는 산짐승 같아라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만 살아왔으니
짐승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바
유아아아 괴상한 울음을 짖으며
지혜로워질 수 있는 날을 망상한다

가을비, 끈덕지게 쏟아붓고
내 코트는 짙은 적색이 되었지
입에 문 담배는 재만 남았네
유아아아, 둥지마저 버리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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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囚人의 고백

글/시 2019. 11. 6. 20:00 |

수인囚人의 고백


제가 밤에 잠 이루지 못하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야밤에, 깨끗한 것을 찾겠다고
산중을 뒤지는 것은

달의 명징함을 만져보겠다고
밤바다로 뛰어들어 더럽게 취해
야밤에, 곡소리를 내며
파도를 헤치는 것은

신 없는 세상에서 하늘에 닿겠다고
담배로 허파 시꺼멓게 태우며
야밤에, 이상하게 노래하면서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는 것은

그것은, 제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순결한 것을 찾아야만
완전한 것을 찾아야만
아름다운 것을 찾아야만

쓰레기 소각장을 뒤지며
통곡하며 죽은 여인을 찾고
공동묘지를 방황하며
붉은 눈으로 어떤 책 한 권을 찾고

그것은 제가 명령받은 죄인이기에
물거품에서
금강석을 찾으라는
누가 내렸는지도 모를 저주에 묶인 죄인이기에

야밤에, 저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무정한 잡초가 되고 싶다고
수평선 향해 철버덕철버덕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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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꿈

글/시 2019. 11. 6. 13:25 |

새벽꿈


한없이 한없이 그리워하던
그 님 만난 밤
오셨다가 떠나셨다
손짓하는 파도에

파도는 수백억 년분의 손 흔들고
바람은 수백억 년분의 춤을 추고
내 님 바람에 발 담그셨다
파도에 산산조각 피었다

아뢰옵건대
윤회의 바퀴로 들어 가렵니다, 하고
말했나? 말했던가?
억겁의 시간에 귀를 잃어버린 나는 모른다

파도는 손 흔들고 바람은 춤추고
하늘은 짓누르는 회색
비가 오려나? 그러나 그 장면에
비는 어울리지 않아

나 목상처럼 서있고 가슴은 흙투성이
필름을 멈추려는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다
비가 오려나, 비가 오려나
비가 오면 소금거품으로 화하는 님도 젖을까

바람은 파도의 손을 잡고 춤추고
스토리라인 무시하고 손 뻗으려는 순간
퍼뜩 깨었고

이불 위에서 되새겨보니
일생 만난 일도 없는 자에게 손을 뻗으려 했던
처량하고 바보 같은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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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일 때

글/시 2019. 11. 5. 21:59 |

바람 일 때


바람이 일고 사람은 태어나고
태어나고 살아가고 이상을 논하고
좁아터진 지구 사상으로 만석이다
담뱃재 같은 생명 맹목으로 내달린다

시끄러워, 나는 외롭단 말이다
이는 바람마다 살갗 베어
늑골 심장 다 드러나
진흙탕 휘적이며 외롭단 말이다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누군가
누군가에게 전할 꽃 한 송이
피우고 싶어 발광하여
발밑에는 무덤뿐

후세는 미래에 죽었고
선조는 과거에 죽었다
나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마른 다리 진창 휘저어대며 죽어간다

그래도 절명할 때
괴로움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림자 전당포에 팔아넘기고
장미 한 송이 사서……

―바람 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다시 만나고 싶은 누군가도 없었구나
고독에 탄식하던 것도 몇 번이던가

참으로 촌극 같은 삶이었습니다
찾기는
누구를 찾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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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그리는 새벽

글/시 2019. 11. 5. 08:59 |

밤을 그리는 새벽


달빛 벌판은 정령들 무덤터
해가 뜨면 즉사한다
풀밭에 녹아내리는 사체는
영령의 에로스

죽음을 동경한다
남았던 희망 이미 사망했다
신발도 의자도 없이
시취 풀풀 나는 지구에 서있다

불만은 없고, 소망도 없으니
절실히 사라지려 할뿐
가을 하늘에는 춤추는 조소
구름들 회색 손잡고 돈다

느린 왈츠 빛나는 무도회복
느린 왈츠 옷자락의 회색 그러데이션

나 올려다보다가
계절은 죽어야한다
계절은 번개처럼 죽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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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해버린 슬픔으로

글/시 2019. 11. 4. 10:25 |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아침 무렵 잔디에는
슬픔 드리우고
산새들 지저귐은
비극 배우의 노래

태양이 뜨나? 산 능선에는
연옥빛 아우성
산사에서도 나는
온 생물의 뒤통수만 보고 있다

생로병사란 네 글자는
삶의 무게만큼 아파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의자도 없는 슬픔만 남았다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온갖 스러져갈 것들을 사랑하고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그림자들의 생몰을 입 다물고 관망 했네

존재해버린 슬픔에
나 영혼마저 죽는 꿈 꾸며
찻잔에서도 독액의 차가운 비웃음을 듣는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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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시절

글/시 2019. 11. 4. 10:05 |

십대 시절


나는 싸돌아다녔다
나는 뛰어다녔다! 온갖 골목을
온갖 그림자가 진 길들을

한 손에는 게르만 인이 잘라준 신의 목을 들고
환희에 차서 모독을 입에
게거품처럼 물고 살아있었다!

내 입은 고라니 같아서 모든 말은
기괴한 비명이 되어 가아악 거리며 울려 퍼졌지
듣는 이들은 모두 괴로워하며 피해버렸지

그러나 내게는 희망이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고……
…………………………………

세계가 정리되고 말 것이라고 믿어
이빨로 혀를 힘껏 물고
스미어 나오는 철분의 환희를 보았다

죽음을 알기만 하면 되겠지! 밧줄, 알약, 날이 선 쇠붙이들
그러면 위대함을 이 작은 손에 잡겠지!
펜촉으로 세계에 흉터를 새기며 나는 잠드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죽은 자들은 진리의 거칠거칠한 표면을
입술로 있는 힘껏 물고 죽었겠지, 내 방은 무덤
나는 공동묘지 안에서만 십 년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희망이 있었어, 희망이 있었어!
동맥에 칼을 박지 않을 이유를 발견했었어!
아아, 그러나, 괴로움은 덜어지지 않고

그렇다면, 고통이야말로 삶의 본질 아닐까
그렇다면, 본질을 가속시키자, 날 구렁텅이에
한숨의 늪에, 영원히 석양만 지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세계로

그래,
정말 정신이 나가버렸군……
보호자님, 이 아이는 이제, 인간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이 있었어, 희망이 있었어!
그러나 그것은 실은 광기라고 불리는 것으로
내 중추신경에 흐르는 흑색화약으로

해를 넘기자 나는 영원히
신발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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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노래

글/시 2019. 11. 2. 23:06 |
사슴의 노래


그리운 마음이 드는데
그리울 것이 없어서
있지도 않을 것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이리도 아픈가

가악 가악 괴성지르는
사슴의 노래는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아
가슴 아프다

사슴이 누구를 부르는지
우리가 무슨 수로 알려나만
저것은 아마도 노래가 아니라
비명이로다

아무도 필요로 해주지 않는 해수의
악의로 쪼그라든 비명이로다
나는 가만히 그 비명을 듣고
내 이야기가 들려 울었다

해수마저 산 깊이 도망치고
뿌옇게 갇힌 창 안에
나는 다시 혼자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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