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간, 이태원 기록


어떤 날이었지. 그날은 어떤 날이었던가.
이태원의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바에서
독약 같은 술을 흠뻑 마시고 끔찍하게 취해
일부러 인종주의자 행세를 하며 사장에게 시비를 걸다가
가게 옆 쓰레기장에서 바라 마지않게 쥐어 터지고
멍든 얼굴로 심야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날은,

사실 그 시절 나의 친구들은
무지개를 갖다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부색이 가지각색이었지
초록색이나 보라색 피부인 친구가 있었다면 정말 놀랄 일이었겠지만.
여하간, 여하간 취하고 추한 모습으로 습기 찬 버스에서
너무 습기 차 창문 밖이 보이지도 않았지, 여하간
나는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옆자리의
우산을 쥔 채 경계하는 눈초리로 내 멍든 얼굴을 흘낏거리는
그 젊은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게 너무 우스워서
발작처럼 이렇게 말했지: 무슨 일이었는지 설명드릴까요?
여자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오’라고 즉답했지
그 ‘아니오’는 내게 ‘당신처럼 비일상적인 존재는 나에게 갑자기 말을 걸 자격이 없다’는
그런 뜻으로 들렸고, 아마 어느 정도는 맞았을 거야,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일상의 여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깔깔대는 웃음을 내장 속으로 삼켜 넣고 조용히 앉아있었지
나중에 결국 그 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단편소설로 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쩐지 한숨이 나오고, 어쩐지 지긋지긋하고, 아아, 이런 건 그만두고,
여하간, 버스에서 내리니 그곳은 그야말로 갈림길이었지,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모든 것의 갈림길이었지
정류장에서 600미터만 걸어가면 내 진정제와 수면제를 삼키고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반대편으로 500미터만 걸어가면 내 친구가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이 있었어
아! 광기의 신이라는 게 있다면, 분명 그 순간에 내게 계시를 내린 거야
나는 정말로 친구가 보고 싶었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외로움이 날 사로잡은 것처럼.
순식간에 나는 희희낙락하여 춤추듯이 발걸음을 옮기고
결국에는 단 10초도 아깝다는 듯이 편의점을 향해 전력질주를 했지
그런데, 그런데 내가 이미 디오니소스보다도 만취했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취했을 때는 달리면 안 돼. 이건 교훈적인 이야기기도 하다고.
돌부리는커녕 아무것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나는 나자빠졌고
너무 빨리 달리고 있었기에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채로 30cm 정도를 밀고나갔어
순간 눈앞에서 자동차 하이빔 같은 게 번쩍였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여하간 일어나보니 얼굴의 절반이 화끈거리고 만져보니 피와 시멘트 가루가 묻어나왔지
그런데 전혀 아프지는 않았지, 물론 알코올 때문이야. 피가 나니 기분이 더 고조됐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과 알코올로 뒤범벅인 유쾌한 생물체가 되어,
나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지. 안녕 친구! 일 할만 하냐?
사실 그 친구는 내게 감사해야 했어. 졸업 후에도 일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것을
마침 그 편의점 사장이 나랑 아는 사이였거든. 뭐 나중에 알고 보니
쓰레기 같은 자린고비였지만.
여하간, 그 새벽에 편의점에 있는 건 친구만이 아니었어, 웬 40대 중반의
말쑥한 신사 아저씨 하나가 뭔가를 사고 있더군.
친구는 카운터 안에서 질색인 얼굴로 날 쳐다보고만 있었어,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걘 학생 때부터 내 이런 꼴을 한두 번 본 게 아니거든.
그런데 초면인 신사 아저씨는 놀란 얼굴로 내게 다가왔어, 그리고는
어디서 이렇게 다쳤어요? 얼굴 반이 날아갔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뭘 꺼내더군
난 친절한 사람들을 좋아해. 친절하며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이면 더 좋아하지. 나는 그냥,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도 술 취했다가 자기 보신 못해서 다치는 젊은이들 많이 보셨을 텐데요.
무슨 희극 연기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야. 실제로 그때 기분이 굉장히 방방 뜨기도 했고.
여하간 신사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반창고였어. 왜 그런 걸 들고 다녔을까.
그리고 내가 괜찮다는 데도 자기 생수로 내 얼굴을 닦아내고 반창고를 붙여주더군.
그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 호의는 알겠는데,
이게 손가락에 붙이는 반창고 열댓 개 붙인다고 도움이 되겠냐고.
여하간, 여하간 나는 신사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생수값이라도 물어드리려고
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냈는데, 결국 받지 않더군, 그는 내게
몸조심하라면서 떠났고, 마침내 카운터 앞에 히죽거리는 얼굴로 도착한 나에게
친구는 질책하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포기한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집에 가라. 가서 약 먹고 자고, 아침에 병원 가라. 이러기에
내가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뛰어오다가 넘어졌다고 하니까 말이야
도대체 왜 술 먹고 뛰냐고 흥분한 기색도 없이 지적하더군
생각해보니까 친구 말이 맞아서 난 교대시간인 오전 6시까지 수고하라고
손을 흔들면서 밖으로 나갔어. 그때 순간 찬바람이 한줄기 불었던 걸 기억하는데
그 순간 얼굴이 감전된 듯 아프더군, 여하간
여하간 난 집으로 갔고, 그때 난 가족들이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였는지 아버지였는지
둘 중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내 얼굴을 보고 말을 못 잇던데
난 여전히 모든 상황이 채플린 영화보다 유쾌하게 느껴지고 있었고
어머니에게 새빨갛게 웃음지어 보인 뒤 내 방에서 약을 먹고 쓰러졌지.

어떤 날이었지, 그 날은 정말 어떤 날이었을까.
그날 난 몇 살이었지? 21살? 22살?
그날 내 뇌하수체에선 무엇이 분비되고 있었을까?
애당초 이태원 따위는 왜 갔었던 걸까?
난 그런 북적이는 유흥가는 태어났을 때부터 거북했는데 말이야.
여하간, 두 달 정도 얼굴 절반을 거즈로 가린 채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상처가 아팠고
여하간, 아예 그런 꼴로 밖을 쏘다니니
행인들이 내 외과적 문제 때문에 날 쳐다본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편안하고
피해망상도 덜 했는데
여하간,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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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1

기록/생각 2020. 6. 11. 17:01 |

이건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것 같다.

하루 종일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변경해야할 단어나 문장구조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간다.

카페인을 몹시 조심하고 있다. 카페인 60mg이라도 섭취했다가는 카페인이 아니라 암페타민을 먹은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과거에 하루 드립커피를 대여섯잔 씩 마셨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사코딜이 도움이 된다. 하루 왠종일 정신이 과운동하고 있지만, 형형색색의 칵테일인 아침약과 취침약을 제외하면 내가 하루에 임의로 복용할 수 있는 신경안정제는 자낙스 두 알 뿐이다. 가장 긴급할 때만 써야한다. 안 그랬다가 고통을 겪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쩐지 비사코딜 10mg이 도움이 된다. 전혀 기작을 짐작할 수 없지만, 그다지 먹는 것도 없는데 장 속을 텅 비우면 신경이 좀 안정된다.

저녁 6시 쯤에는 꼭 자낙스 한 알을 복용한다. 그때쯤 아버지가 퇴근하시는데, 보통 오후 6시까지 난 3~4시간을 쉬지도 않고 글을 쓰느라 뇌에 불이 붙은 상태다. 아버지에게 내 분노문제와 히스테리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인간이 생화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내 믿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 알프라졸람 제제는 순식간에 날 친절한 가족구성원으로 만들어놓는다. 이후 두 시간 정도 진정한 채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 따위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덤이다.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집필과 조사, 집필과 조사, 집필과 조사, 그리고 집필과 조사뿐이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을 뇌가 무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지금 내 뇌는 스스로를 혹사시키면서, 동시에 '이번 작품만 완성한다면' 운운하는 희망만을 이상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행복하고, 분노에 떠밀려가면서도 행복하고, 히스테리컬한 신경증 환자가 되면서도 행복하다.

이건 그야말로 저주에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저주는 아니겠지. 왜냐하면 내가 의학사전에서 '조증 삽화'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았으니까.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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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3 상태 기록

기록/생각 2020. 5. 23. 17:02 |

20200523 상태 기록


 평온하고, 고통은 딱히 없다.
 어머니가 책을 한 권 주었다. 지금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마음부터 부자가 되면, 부와 행운이 스스로 굴러들어온다는 내용인 것 같다. 읽어보려고 했다. 항콜린 작용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금세 덮어버렸다.
 서맥이 있는 것 같다. 관련이 있는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지만, 요 두 달 사이에 걷는 속도가 놀라울 만큼 느려졌다. 육지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해도 내가 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머릿속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그러나 그 먹구름이 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항상 둔하고, 바깥세상에서는 전과 같이 쉴 틈도 없이 자극과 정보가 들어오지만, 그걸 연산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얼마 전 뭔가를 구입하기 위해 간단한 산수가 필요했다. 2만을 100으로 나눠야했다. 30초 정도 생각했으나 도무지 계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친구에게 물어봤다가 저능아 취급을 당했다. 나는 한 박자 늦게, 내가 이런 산수 문제를 못 풀었다니, 약간 놀라면서 실없이 웃었다.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바보인 채로 죽는 것은 약간 두렵다.
 5kg 내지 6kg의 체중을 잃었다. 겨우 두 달 사이에. 20대 초에 나는 여러모로 유의미한 저체중이었다. 그때 산 바지를 다시 입어보았다. 조금 헐거웠다. 왜 점점 살이 빠지고 있는지는 사실 알고 있다.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체중감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생 그런 짓은 한 번도 시도해본 일이 없다. 단지 어떤 음식을 보아도, 그것이 음식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을 입으로 넣어서 맛을 음미하고, 씹고, 삼켜서 소화기관에 보내, 육체의 자양분으로 삼아야한다는 인식이 사라졌다. 한 술 더 떠 며칠을 굶어도 허기를 느끼지 못하고, 한때 자랑거리로 삼았던 미각마저 부서졌다.
 얼마 전 부엌에서 동생이 닭고기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별 이유도 없이 비척비척 다가가 구경했다.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나는 원래 닭고기를 좋아했다. 돼지나 소보다도 닭이 단연코 내 취향이었다. 그러나 동생이 손질하고 있는 그것이 도무지 닭고기로 보이지 않고, 그저 동물 시체조각으로 보였다. 채식주의 윤리 같은 흰소리랑 연관 지으면 곤란하다. 쌀로 밥을 지어도 그게 밥이라기 보단 단지 아사하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 삼켜야하는 사료로 보이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성욕을 느꼈던 것이 언제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마침 날씨도 따뜻해져 젊은 여자들이 아리땁고 얇은 옷 따위를 입고 활보하는데, 난 이제 그녀들과 걸어 다니는 목각인형의 차이점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그저 평온하고, 고통은 딱히 없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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