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간, 이태원 기록
기록/생각 2020. 7. 29. 07:35 |여하간, 이태원 기록
어떤 날이었지. 그날은 어떤 날이었던가.
이태원의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바에서
독약 같은 술을 흠뻑 마시고 끔찍하게 취해
일부러 인종주의자 행세를 하며 사장에게 시비를 걸다가
가게 옆 쓰레기장에서 바라 마지않게 쥐어 터지고
멍든 얼굴로 심야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날은,
사실 그 시절 나의 친구들은
무지개를 갖다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부색이 가지각색이었지
초록색이나 보라색 피부인 친구가 있었다면 정말 놀랄 일이었겠지만.
여하간, 여하간 취하고 추한 모습으로 습기 찬 버스에서
너무 습기 차 창문 밖이 보이지도 않았지, 여하간
나는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옆자리의
우산을 쥔 채 경계하는 눈초리로 내 멍든 얼굴을 흘낏거리는
그 젊은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게 너무 우스워서
발작처럼 이렇게 말했지: 무슨 일이었는지 설명드릴까요?
여자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오’라고 즉답했지
그 ‘아니오’는 내게 ‘당신처럼 비일상적인 존재는 나에게 갑자기 말을 걸 자격이 없다’는
그런 뜻으로 들렸고, 아마 어느 정도는 맞았을 거야,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일상의 여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깔깔대는 웃음을 내장 속으로 삼켜 넣고 조용히 앉아있었지
나중에 결국 그 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단편소설로 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쩐지 한숨이 나오고, 어쩐지 지긋지긋하고, 아아, 이런 건 그만두고,
여하간, 버스에서 내리니 그곳은 그야말로 갈림길이었지,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모든 것의 갈림길이었지
정류장에서 600미터만 걸어가면 내 진정제와 수면제를 삼키고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반대편으로 500미터만 걸어가면 내 친구가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이 있었어
아! 광기의 신이라는 게 있다면, 분명 그 순간에 내게 계시를 내린 거야
나는 정말로 친구가 보고 싶었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외로움이 날 사로잡은 것처럼.
순식간에 나는 희희낙락하여 춤추듯이 발걸음을 옮기고
결국에는 단 10초도 아깝다는 듯이 편의점을 향해 전력질주를 했지
그런데, 그런데 내가 이미 디오니소스보다도 만취했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취했을 때는 달리면 안 돼. 이건 교훈적인 이야기기도 하다고.
돌부리는커녕 아무것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나는 나자빠졌고
너무 빨리 달리고 있었기에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채로 30cm 정도를 밀고나갔어
순간 눈앞에서 자동차 하이빔 같은 게 번쩍였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여하간 일어나보니 얼굴의 절반이 화끈거리고 만져보니 피와 시멘트 가루가 묻어나왔지
그런데 전혀 아프지는 않았지, 물론 알코올 때문이야. 피가 나니 기분이 더 고조됐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과 알코올로 뒤범벅인 유쾌한 생물체가 되어,
나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지. 안녕 친구! 일 할만 하냐?
사실 그 친구는 내게 감사해야 했어. 졸업 후에도 일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것을
마침 그 편의점 사장이 나랑 아는 사이였거든. 뭐 나중에 알고 보니
쓰레기 같은 자린고비였지만.
여하간, 그 새벽에 편의점에 있는 건 친구만이 아니었어, 웬 40대 중반의
말쑥한 신사 아저씨 하나가 뭔가를 사고 있더군.
친구는 카운터 안에서 질색인 얼굴로 날 쳐다보고만 있었어,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걘 학생 때부터 내 이런 꼴을 한두 번 본 게 아니거든.
그런데 초면인 신사 아저씨는 놀란 얼굴로 내게 다가왔어, 그리고는
어디서 이렇게 다쳤어요? 얼굴 반이 날아갔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뭘 꺼내더군
난 친절한 사람들을 좋아해. 친절하며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이면 더 좋아하지. 나는 그냥,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도 술 취했다가 자기 보신 못해서 다치는 젊은이들 많이 보셨을 텐데요.
무슨 희극 연기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야. 실제로 그때 기분이 굉장히 방방 뜨기도 했고.
여하간 신사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반창고였어. 왜 그런 걸 들고 다녔을까.
그리고 내가 괜찮다는 데도 자기 생수로 내 얼굴을 닦아내고 반창고를 붙여주더군.
그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 호의는 알겠는데,
이게 손가락에 붙이는 반창고 열댓 개 붙인다고 도움이 되겠냐고.
여하간, 여하간 나는 신사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생수값이라도 물어드리려고
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냈는데, 결국 받지 않더군, 그는 내게
몸조심하라면서 떠났고, 마침내 카운터 앞에 히죽거리는 얼굴로 도착한 나에게
친구는 질책하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포기한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집에 가라. 가서 약 먹고 자고, 아침에 병원 가라. 이러기에
내가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뛰어오다가 넘어졌다고 하니까 말이야
도대체 왜 술 먹고 뛰냐고 흥분한 기색도 없이 지적하더군
생각해보니까 친구 말이 맞아서 난 교대시간인 오전 6시까지 수고하라고
손을 흔들면서 밖으로 나갔어. 그때 순간 찬바람이 한줄기 불었던 걸 기억하는데
그 순간 얼굴이 감전된 듯 아프더군, 여하간
여하간 난 집으로 갔고, 그때 난 가족들이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였는지 아버지였는지
둘 중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내 얼굴을 보고 말을 못 잇던데
난 여전히 모든 상황이 채플린 영화보다 유쾌하게 느껴지고 있었고
어머니에게 새빨갛게 웃음지어 보인 뒤 내 방에서 약을 먹고 쓰러졌지.
어떤 날이었지, 그 날은 정말 어떤 날이었을까.
그날 난 몇 살이었지? 21살? 22살?
그날 내 뇌하수체에선 무엇이 분비되고 있었을까?
애당초 이태원 따위는 왜 갔었던 걸까?
난 그런 북적이는 유흥가는 태어났을 때부터 거북했는데 말이야.
여하간, 두 달 정도 얼굴 절반을 거즈로 가린 채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상처가 아팠고
여하간, 아예 그런 꼴로 밖을 쏘다니니
행인들이 내 외과적 문제 때문에 날 쳐다본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편안하고
피해망상도 덜 했는데
여하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