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말이에요,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이니, 미학에의 갈구니 하는 것은 모조리 거짓말입니다. 그럼 왜 평생을 이토록 치열하게 해왔느냐고 물으시겠죠. 우선은 제 저주받은 성질 중 하나에 원인이 있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누군가에게 실망을 사는 일에 병적인 공포를 갖고서 살아왔습니다. 예술을 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정해진 길은 하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나 이것은 영원하고 추악한 동기입니다. 제 안에서 날뛰는 광폭함이 펜이든 페이지로든 대신 날뛰게 하겠다는, 비겁하고 비열한 동기였던 것입니다. 이 나이나 되어서 아직도, 저는 중학생 때의 일기 한 부분을 뇌에 칼로 새긴 것처럼 기억합니다. 예술가와 이상범죄자의 차이가 얼마나 애매모호한가라는, 돼먹잖은 주제를 가지고서 하루 새벽을 꼬박 종이 위에서 날뛰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광증을 왜 아직까지 기억하겠습니까. 예술가라는 것은 찬란하고 빛나는 이름인데, 저는 결코 그것이 저에게 오거나, 혹은 제가 잡아챌 수 있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믿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동기부터가 불순하고 비열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누군가에게도 실망을 사고 싶지 않아서, 저는 계속해서 소위 치열하다는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가 지금까지 존경해왔던 모든 선생님,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애초부터,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 등의 고고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광기가 허가되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광기를 병증으로 바꿔 써도 아무 문제 없지 않을까요? 특히 이러한 의학과 과학의 시대라면, 광기보다는 병증 쪽이 치료나 구속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저 자신에게 중요하기나 한 문제인가요? 그런데 고골의 광인일기가 어떻게 끝났죠? 누구의 코에 사마귀가 있었습니까?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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