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의 종말

글/시 2018. 9. 16. 02:18 |

탄생의 종말



이 도시에서 보는 하늘은 밤에도 회색이다


완전한 어둠과 별빛의 청량함을 기억하는 건

산중턱의 밭두렁에서 귀신을 보고 두려워하던 기억이 있다

촛불의 일렁임에 정신이 팔려 찻물을 발에 쏟은 기억이 있다

가을 달의 청명함에 몇 시간이고 하늘을 보던 기억이 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산

새들은 죽고 나무들은 말이 없다

새벽 세 시가 되면 저 높은 곳에서

새벽예불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그 전까지는 만물이 자는 산


술에 취한 새벽 두 시

도시를 거닐면 사방이 찬란하고 적색이고 회색이다

내 폐는

문명을 통과한 타르와 니코틴

매연가스에 거멓게 쿨럭이며 음악을 갈구한다

그러나 절대 노래 부르지 못 한다


온전한 달빛을 본 지 얼마나 되었지?

밤의 구름은 이미 구름이 아니다

저 옛날, 그러나 너무 옛날은 아닌

산 속에서 죽은 신들에게 둘러싸여 입을 다물고 기다릴 때

나는 묶인 입으로 달을 노래했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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