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7 완성.
1. 여러 일들이 있은 후에 나는 세속의 진지함을 고통스럽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존재의 진중함과 부조리를 다시 찾아내게 되었다.
구도求道
우선 내 젊은 시절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으로 삼아야할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독한 럼주를 마시고 궐련을 피우는 것을 즐겼으며, 친구들과의 모임을 좋아해 자주 찾아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모임자리를 계획하고 주관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중간규모의 사무기기 제작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내게 맡겨진 일은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들의 사용설명서를 쓰는 일이었다. 이것은 계획적으로 제품을 관찰하고 움직여보거나 한 뒤에 고객의 입장이 되어 문장과 도면을 창작하는 일이었으므로 다소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새로운 제품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나오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다른 부서의 동료들에 비해 회사에 나가야할 횟수가 대단히 적었으며 심지어는 일 자체를 집안에서 끝내버리고 결과만을 나의 상사에게 우편으로 부치는 것으로 일을 마칠 수도 있었다. 고로 내게는 회사원치고는 자유시간이 상당히 많이 주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경제는 몹시 호황이었고 사용설명서를 쓴다는 일이 그 일을 설명하기 위한 문장의 길이보다도 훨씬 정교하며 전문적인 능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일의 수고로움에 비하여 나는 회사로부터 매달 대단한 급여를 지급받았다. 나는 한창 혈기왕성한 청년이었고 언제나 포마드로 머리를 단정히 넘긴 채 굳이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나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서 세련된 정장을 입고 다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사교적이고 인기가 많은 멋쟁이 젊은이로 통했다. 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항상 미소를 머금은 채 입 한쪽에는 궐련을 물고 연기를 뿜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는데, 그렇게 듣기만 하는 것으로도 이야기나 친구들의 움직임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무척 즐거웠다. 그야말로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했다. 이미 말했듯 한 달 중 서너 번 정도만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도 회사는 충분한 금액을 내게 지불했고 그 돈들을 생활비로 쓰고 난 뒤에도 항상 많은 액수가 남았기에, 나는 늘 친구들을 대동하고 멋들어진 바Bar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럼주를 사기도 했고 가끔씩은 쿠바에서 건너온 시가를 태우는 둥 사치도 즐겼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입으로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잘 생긴 청년이었다. 흰색 피부에 짙은 눈썹, 윤곽이 확실한 오똑한 코와 약간 조소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려한 눈매, 남자치고는 색이 붉은 얇은 입술 등이 나를 그 누구보다 매력적인 젊은이로 보이게 했다. 당시 내가 메르세데츠를 몰고 맞이하러 가기만 하면 가장 먼저 내 어깨를 감싸 안고 키스를 하곤 하던 여자친구 L은 그토록 내 얼굴을 좋아했다. 그녀와 잠자리를 할 때도 나는 그녀가 나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얼굴과 잠자리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하다가 웃음을 터트린 일도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당당하고 잘 생긴 어느 멋쟁이 젊은이의 무엇 하나 모자랄 것 없는 황금기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었다.
내겐 항상 어떤 병病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부가 썩거나 눈동자가 노랗게 변하는 그런 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정신에 감염되어 마치 한 마리의 관념적인 벌레가 정신을 느릿느릿 염치 좋게 갉아먹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병이었다. 당시에 난 그것을 도대체 무어라 표현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왜 이런 병에 걸린 것인지조차도 말이다! 설명하자면 그것은, 아침에 침대에서 발코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빛에 맞아 깨어났을 때 느껴지는 들척지근하면서도 어쩌면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그런 영문 모를 갑갑함이었고, 어느 휴일 저녁 친구들과 한바탕 마시고 놀아제낀 뒤 홀로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다가 궐련갑에서 궐련 한 개비를 뽑을 때 손가락 끝에서부터 이어진 온몸의 신경이 화들짝 놀라 그만 궐련을 떨어트린 채 멍하니 굳어있는 순간이었으며, L과의 흠뻑 만족스런 잠자리를 가진 뒤 침대 곁에 앉아 만면에 미소를 띨 때 갑자기 ―그리도 건강한 육체를 가진 내가 필연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끔찍이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오른쪽 눈에서 흘러나오는 한 방울의 눈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증상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별것 아닌 가벼운 신경증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결코 그렇지 아니했다. 그 병은 실제로 나의 생활을 파먹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날은 저녁에 원목 테이블에 앉아 궐련을 피우다가 갑작스레 이유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절망감이 나를 덮쳐서, 나도 모르게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를 것 같아 찬장에 있던 술을 꺼내 구역질이 나올 때까지 퍼마시다 쓰러지기도 했다. 어떤 친구들과의 모임 때는 언제나 즐겁던 그 유쾌한 대화들이 내 뇌수를 찌르는 송곳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벌컥 화가 나 내 사랑하는 친구들의 멱살을 잡을 뻔도 했다!―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나의 초인적인 인내심에 지금도 감사하는 바다― 여느 때처럼 내 어깨에 감겨오는 L의 가녀린 팔이 뜬금없이 무슨 지네나 바퀴벌레 따위의 흉악한 벌레들의 덩어리처럼 보여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친 일도 몇 번인가 있었다. 나는 도무지 그런 증상들이,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내 아버지의 친구 중 의학박사가 한 명 있었기에 찾아가볼까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사라는 족속들에게 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았고, 가령 3에서 4할 정도라도 분명하게 전달한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고작 발륨이나 한 병 쥐어주는 것으로 일을 끝낼 것이라는 생각이 당시의 내 결론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괜찮다고 믿고 있었다. 도대체가 완벽한 인생이라는 게 어디에 있기나 하겠는가? 내가 충분히 젊고 아름답고 돈도 부족하지 않으며 즐거운 친구들과 아름다운 연인이 있으니 그만큼 또 내가 짊어져야하는 십자가가 있겠거니 싶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인생이란 평등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어린 머리로 대충 계산을 끝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치명적이지만 그리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 문제들을 껴안고서도 어떻게 즐겁고 당당한 젊은이로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진짜 문제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정확히 일 년 하고도 반 년 뒤에 벌어졌다. 아버지가 죽은 뒤 홀로 생활하는 어머니를 나는 두어 달에 한 번씩은 찾아가곤 했다. 무어 내가 어머니에 대한 대단한 사랑이나 효심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고 다만 그것이 으레 아들들이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미 나는 내 월급의 3할 정도를 매달 어머니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무슨 일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늙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가정부를 한 명 두지 그러세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더니 어머니는 「아니야. 늙었다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 이대로 나무조각처럼 굳어버릴 것 같거든」 하고 대답했었다. 애당초 대수롭지 않게 던진 제의였으니 무슨 대답이 나오든 관심도 없었던 나는 이미 내가 어릴 적에 지내던 2층의 방으로 목조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본가를 방문하는 건 자주 있었던 일이지만 내가 썼던 방으로 들어가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문을 열자 내가 어릴 적에 쓰던 그대로 책상이니 침대 따위가 남아있었는데, 다른 점은 이미 오랫동안 청소는커녕 문도 열지 않아 먼지가 모든 곳에 회색으로 두텁게 쌓여있다는 점뿐이었다. 내가 그 안을 구두를 신은 채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돌자 방바닥에는 레일처럼 둥글게 내 구두자국이 생겼다. 그 정도로 먼지가 두터웠던 것이다. 그것이 재미있다는 듯이 나는 구석구석을 구두창으로 밟고 있었는데, 바닥을 통해 어머니의 얕은 외침이 들려왔다. 「네 애인은 요새 어떠니?」 「L은 여전히 발랄하고 아름다워요」 나는 어머니에게 들릴지 어떨지도 확실하지 않은 애매한 높이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물론 어머니보다 훨씬 젊죠, 그야 젊으니까. 이렇게 들리지 않을 혼잣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계속 먼지들을 밟고 있던 나는 책상 앞에서, 내가 어렸을 때 썼던 책장에 그 시절 읽던 책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책장 속이라고 해서 먼지를 피할 수는 없었다. 모든 책들의 윗면과 제목이 적혀진 등에 뽀얗게 먼지가 묻어있었다. 나는 제목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책을 아무 것이나 하나 뽑아서 펼쳤다. 먼지가 진눈깨비처럼 대단히 날리더니 내 옷소매와 구두 등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책은 소설책이었다. 내가 학생 때 읽은, 그러나 정확히 언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어떤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의 작품이었다. 나는 별 의미도 없이 그 책을 얼굴 가까이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먼지와 오래된 종이의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는데…… 그렇다, 그때 나의 젊음이 무너진 것이다.
나는 책을 떨어트렸다. 병이다! 그 병이 도졌다! 덧났다! 아니 차라리 발광하고 있다! 나는 갑자기 사납게 바뀐 눈동자로 들어온 문을 찾아 도망쳤다. 거의 구르다시피 계단을 내려갔고, 깜짝 놀란 어머니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메르세데츠의 시동을 걸면서 나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젠장, 아니었어, 아니었어, 아니었단 말이다. 그건 병이 아니었다. 그건 진실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파묻어둔 진실이 이따금 흔들흔들 진동하는 것을 나는 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메르세데츠는 아직도 쌩쌩 달리는 신차나 다름없었지만 손이 떨리는 바람에 세 번째 시도에야 시동이 걸렸다. 나는 미친놈처럼 엑셀을 밟았다.
이상이 내 젊은 시절에 대한 설명이다. 지금 나는 그때에 비해 몹시 나이를 먹었다. 사십이 넘은 뒤로는 해와 날짜를 세지 않았고 내 방에는 달력조차 들여놓지 않았다. 나는 어떤 빌딩의 지하실에 살림을 차렸다. 마지막으로 밖에 나갔던 것이 아마 3주 전으로, 내가 유일하게 먹는 음식인 참치 통조림과 인스턴트커피를 사재기하러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되고 보니 도대체 무엇부터 설명을 해야 하고, 설명을 한들 그것이 설명이 되기나 하련지 모르겠다. 여하간 젊은 시절의 나를 가끔 불편하게 했던 그 병이, 병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확실하게 안다. 그야 알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지금 나이기 때문이다. 그 먼지투성이 책의 종이냄새를 맡은 뒤부터 나는 나의 모든 것들을 천천히 단절시켜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었으니까. 우선은 술을 끊었던 것 같다. 그 뒤엔 담배였다. 시가든 궐련이든, 럼주든 소주든 그것들은 틀림없이 내 진실을―고독을 방해하는 위안물이었다. 고독은 무슨 일이 있어서도 위안을 받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똑똑히 깨달았던 것이다. 아, 이렇게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질색이다. 고독과 진실이 사실 같은 단어라는 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킨단 말인가? 모를 일이다. 다만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그만 두었다. 그들에게 몹시 전화가 걸려오고 몇몇은 집까지 찾아와 걱정스럽다는 듯이 안부를 묻곤 했다. 그래서 나는 집도 옮긴 것이다. 햇빛도 진실을 방해했다. 햇살이 닿지 않는 지하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모든 변화들을 결정지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슬픔이나 광란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실을 좇아 진실대로 사는 것이 어떻게 슬픔이고 광란일까? L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그녀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쉬울 것도 없었다. 엑셀레이터를 미친 듯이 밟은 그 날부터 왜인지 내게는 도무지 욕정이라는 것도 생기질 않았다. 마치 거세된 말처럼.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그녀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전화선을 뽑고 방안을 어지러이 돌아다니다가 몇 가지 깨달음과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갖고 있던 집을 팔고 지하실을 하나 산 것이다. 나는 점점 철저하게 고립되어가면서 자부심까지도 느꼈다! 사실은 마이크를 들고 모두에게 외치고 싶었다, 나는 진정으로 고립되리라고. 그러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은 물론 누군가에게 말을 던지는 것도 ―내가 이런 단어를 쓰는 것에 대해 숙고해주시기 바란다―불경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입을 닫고, 닫고, 지하로, 아래로 내려왔다. 이젠 럼주도 궐련도 맛있는 음식과 차[茶]도 따뜻한 침대도 다 필요 없었다. 나는 지하실 안에서 밖에 있을 적敵들에 대하여 단단히 철제 현관을 잠그고, 오로지 하루 한 캔의 참치 통조림을 먹고 대신 엄청난 양의 커피를 마신다. 진실에 따르면 잠시라도 졸릴 수는 없고 정신이 멍해져서도 안 되는 법, 그리고 포만감 역시 내 안의 적이다. 나는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물은 수돗물을 마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 자신을 벌주고 있다거나,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제발 그만둬주시길! 차라리 그 반대이다! 아아, 이것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지? 나는 혼잣말조차 하지 않는다. 혼잣말이라는 것도 약간의 위험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선의 삶을 살아내는 중인 것이다! 물론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해 뼈밖에 안 남은 몸에 이미 반백이 된 긴 머리와 북슬북슬한 수염이 날 이질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상식인의 입장으로서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람?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단 하나도! 약간이라도 정신이 멍해질라치면 나는 커피를 끓이면서, 아 그래! 솔직해지고자 한다면 나는 늘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진실은 고통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젊고 잘 생겼던 내 얼굴은 이미 수염 난 해골처럼 되어버렸지만 나는 이 고립과 고독과 고통 속에서 지고의…… 지고의…… ―도대체가 언어란!―기쁨, 그래, 기쁨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 극한의 삶 속에서, 나는 분명 진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제 현관문이 제대로 잠겨있나? 그래, 제대로 잠겨있군. 적들은 교활하다. 그들은 내게 상냥한 어투로 접근하며 나의 고립을 깨트려, 가짜 세계로 다시 돌아가게 만들 것이다. 몇 주 뒤 커피든 참치 통조림이든 바닥이 난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쇠사슬과 자물쇠로 된 잠금장치를 사다가 현관에 달아야겠다. 나의 이 기쁨은, 즉 고독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철저하게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