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27 완성.
1. 줄거리는 내 창작물이 아니다. 김영승 시인께서 제공해주신 개인적인 경험담을 소설화한 것.
2. 짧다. 그다지 분량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쓰려고 했다. 시대적 리얼리티에 대해서는 아직 완성도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쓴 글이다.
3. 다 쓰고나서 알게 된 것인데, 망둥이는 비늘이 없는 생선이었다.
바보
아직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파란 빛이 장막처럼 땅을 뒤덮고 있는 이른 아침이었다. 영욱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5시 14분이었다. 그는 버스 정류장에 서있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길이었고, 길가에 솟은 나무와 관목들은 새벽빛 때문에 어둑한 푸른색으로 윤곽만 나타나 보일 뿐이었다. 정류장의 벤치에는 늙은 여인이 한 명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영욱의 어머니였다. 영욱은 앉아서 미동도 않는 그녀를 가끔 곁눈질로 살피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는 늙었다. 벌써 오십은 되었다. 문득 그는 자신의 낡은 육신과 얼굴 위에 깊게 파인 주름들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욱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길 건너편에 있는 젖은 나무와 젖은 풀들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 특유의 축축한 공기 때문에 가벼운 오한이 들었다.
비와 햇빛을 가릴 반투명 플라스틱과 벤치로 이루어져있는 정류장은 몹시도 낡았다. 반투명 플라스틱은 손닿는 곳까지 온통 상처투성이고 나무로 된 벤치는 오래된 습기 때문에 얼룩덜룩했다. 영욱의 어머니는 그 위에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그녀는 이미 몇 년 전에 팔십을 넘겼고 머리는 온통 새하얗게 바랬다. 영욱은 문득 자신의 어머니가 이미 사람인지 사물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교회까지 데려다주기 위해서 나는 이 이른 아침부터 그녀와 함께 밖에 나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렇게도 늙은 어머니의 신앙심이라니…….> 그는 생각했다. 신앙심! 머릿속에 떠오른 그 단어가 영욱을 조금 놀라게 했다. 늙은 여인들 특유의 신앙심이라는 것은 참으로 괴상한 것이다. 사실 영욱은 <그녀들>이 믿고 있는 것이 과연 신인지 아니면 일종의 관성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영욱 자신은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을 믿지 않는 다기 보다는 차라리 그러한 인지를 초월한 절대성에 대해 무관심한 종류의 인간이라는 설명이 더 나을 것이다. 그는 예전부터 그랬다. 젊었을 때에도, 그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경도되기 쉬운 유토피아라던가 공동체 사상 같은 것에 영욱은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친구나 동료들은 어떤 사상 공동체에 입단한다던지 기존 체제와 싸우면서 정의를 부르짖느라 바빴지만 영욱은 늘 모종의 허무주의가 깃든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오만과도 닮은 점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충실했다. 말하자면 그는 태양빛을 사랑하되 태양으로 날아오르려고 하지는 않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버스가 오는구나.」 갑자기 영욱의 늙은 어머니가 주름진 입술을 움직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과연 멀리서 버스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 하나가 시선 저편에서 털털거리며 포장되지 않은 도로의 습기 찬 흙먼지를 흩날리면서 굴러오고 있었다. 버스 차창 안쪽에는 불이 켜있었다. 사방은 푸른색으로 어두운데 버스만이 인조 된 불빛을 뿌리면서 달려오는 모습이 영욱의 가슴 속에 이상한, 원시적인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았을 법한 정글 한 가운데에 난데없이 가로등 하나가 흰색 빛살을 뿌리며 서있는 광경을 발견한 듯이 말이다.
아무튼 버스는 천천히 속력을 줄이더니 정류장 앞에서 조용히 멈췄다. 영욱은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켰다. 버스기사가 차창 안쪽에서 영욱과 그의 어머니를 힐끗 쳐다보더니 레버를 당겨 출입구를 열었다. 두 사람은 버스에 탔다.
영욱은 어머니와 자기 몫의 차비를 돈 통에 넣고 차내를 둘러보았다. 차내가 밝은 탓에 창문 밖은 새까맣게 어두웠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엔진 소리뿐이어서 적막했다. 버스 자체가 하나의 고립된 섬인 것 같았다. 승객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영욱은 버스 맨 앞자리에 어머니를 앉히며 곁눈질로 승객을 보았다. 스포츠 컷으로 짧게 깎은 흰 머리가 눈에 띄는 늙은 남자였다. 승객은 창문 밖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욱은 그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애수의 파편 같은 것을 느꼈다. <이상하군.> 그가 자신이 느낀 감정의 부당성에 의문을 가지면서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머니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기사까지 합쳐 차내에는 총 네 명이 있었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영욱의 어머니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던 데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말수가 적어졌다. 이제 그녀는 꼭 필요한 말이나 가끔 혼자서 중얼거리는 혼잣말 말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집안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늘 창가에 앉아 창밖의 길거리를 바라보며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목소리로 가끔 뭐라고 웅얼웅얼 거리곤 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는 말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말>조차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은 이제 인생의 말미에 다다라서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영욱은 가끔 그런 어머니의 옆모습을 볼 때마다 곧 세상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될, 닳고 닳은 동전 한 닢 같은 그 여인의 <의식>이 측은하게 느껴지곤 했다. 왜냐하면 이제 자신도 충분히 늙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연 지나간 과거들을 어떤 심정으로 기억할 것인가? 그런 것이 영욱에게는 늘 울적한 의문이었다.
그때 영욱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승객이 어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영욱은 그의 옆얼굴을 볼 수 있었다. 주름지고 검게 탄 늙은이의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가에 깊이 팬 여러 개의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하회탈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완연한 웃는 얼굴이었다. 그는 지금도 웃고 있었다. 광인인가? 영욱은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다. 요즘에는 하도 광인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다. 시내만 나가도 실없이 웃고 다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전에 어머니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어머니는 그게 전부 《시대 탓》이라고 하셨지. 먹고 살기가 힘드니 그런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어쩐지 저 늙은이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특별히 알고 있는 미치광이가 있던가? 왠지 저 얼굴, 저 웃는 표정을 보니 가슴이 무거운 것이 심상치가 않다……. 그런데 저 자가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군! 저 헤벌쭉 웃는 얼굴을 보라지. 바보로군. 바보……. 그런데 바보라고?> 그제야 영욱은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그 바보 승객은 과연 영욱이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저 사람은 바로 그 《바보 아저씨》가 아닌가!> 영욱은 놀라서 마음 속으로 외쳤다. 아직도 이 마을에 있었구나!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바보 아저씨>를 놀란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영욱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사십 년 전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시간의 모래바닥 속에 파묻혀있던 과거들이 삽시간에 새벽에 뜬 샛별처럼 환하게 나타났다. 사십 년 전, 그러니까 영욱이 열 살이었을 무렵이다. 그는 그때도 이 마을에 살았다. 물론 그 시절엔 지금처럼 버스가 나다니지는 않았다. 노새가 쓰레기 마차를 끌던 시절이다. 지치고 멍청한 얼굴의 노새가 마차를 끌고 길에 나타나면 주부들은 집안에서 쓰레기를 들고 나와 마차에 싣곤 했다. 길거리엔 나귀똥이 퍼질러져있고 문둥이들이 소쿠리를 뒤집어쓰고 밥을 얻으러 다녔다. 영욱은 해가 뜨면 동무들과 거리에서 놀이를 하거나 언덕 너머 바닷가로 낚시를 하러 가고는 했다. 여름에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길바닥에선 달궈진 돌과 볏짚 냄새가 열기와 함께 흘렀고 바다는 더없이 풍성한 나신을 그에게 제공해주었다. 그런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바보 아저씨가 살았다.
그는 늘상 웃고 다니며 손에 목장갑을 끼고 다니는 동네 바보였다. 영욱이 열 살 즈음 되었을 때 바보 아저씨는 이미 삼십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는 늙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바보 아저씨는 매일 같이 거리에 나와 어슬렁거리다가, 어디에선가 구해온 호루라기를 불며 교차로 따위에서 교통정리하는 흉내를 내고는 했다. 그는 그짓을 좋아했다. <아니, 좋았는지 어쨌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늘 웃는 얼굴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내가 동무들과 함께 재미삼아 그에게 돌을 던져댈 때도 그는 벙글거리며 웃었다.> 영욱은 생각했다.
그는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사십 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영욱은 괴상한 반가움과 함께 호기심을 느꼈다. 그의 눈이 바보 아저씨의 손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아직도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영욱은 앞자리에 앉은, 졸고 있는 것인지 사색에 잠긴 것인지 심지어는 죽은 것인지조차도 구분이 가지 않는 어머니를 작은 소리로 불렀다.
「어머니. 옆자리의 저 승객 보이세요? 저 어렸을 때 마을 살던 바보 아저씨입니다!」
그러자 영욱의 어머니는 슬며시 눈을 뜨더니 옆자리로 눈길을 향했다. 바보 아저씨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손장난을 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의 옆모습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마침내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그 불쌍한 사람이구나.」 그러나 그 놀라는 모습에 마저도 일종의 늙은 무관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이 여인에게 남은 것은 신(神)밖에 없는가보다.> 영욱은 그녀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흔들리는 차내에서 균형을 잡고 바보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영욱은 조금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곧 바보 아저씨가 앉은 좌석의 철봉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바보 아저씨에게 입을 여는 것이었다.
「어디 가십니까 아저씨?」 영욱은 웃는 낯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 바보는 싱글거리는 얼굴로 영욱을 바라보더니, 슥 고개를 돌려 앞을 보는 것이었다. 영욱은 의아하여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 초 쯤 지난 뒤에 바보 아저씨는 다시 영욱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헤헤거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 네 동생 영기 죽는 거 봤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말했다! 「너도 나한테 돌 던졌지?」
도저히 칠십 살 늙은이의 어조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영욱은 순간 충격에 빠졌다. <영기라고? 나 어렸을 때에 동네에서 차사고로 죽은 내 동생 영기 말인가? 그걸 이 바보가 보았다고? 그렇다면 아마도 교통정리 놀이를 하던 중에 보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자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영기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닌가. 사십 년 동안 얼굴이 바뀌어도 한참은 바뀌었을 텐데 이 《바보》는 바로 내가 누군지를 기억해냈다! 그는 심지어 내가 자신에게 돌을 던졌던 것까지도 기억한다. 이래서야 도대체 누가 바보란 말인가…….> 영욱은 어쩐지 허탈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영욱은 얼이 빠진 채로 눈앞의 하얀 스포츠 컷 머리를, 하회탈 같은 웃는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보 아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늙고 주름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의 말로 인하여 영욱의 머릿속에는 폭풍처럼 과거의 기억들이 들고 일어났다. 동생 영기가 죽던 날의 어찌할 바 모를 당혹감과 잠든 짐승처럼 들썩거리는 우울. 그리고 모든 것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동생이 죽고 장례가 끝난 날 영욱은 혼자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갔다. 집안 분위기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침울했다. 영욱은 그런 집에서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할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무작정 낚싯대를 들고 나온 것이었다. 바닷가로 가기 위해서는 언덕을 하나 넘어야했다. 언덕 위에는 공원이 있었는데, 공원 한쪽에는 당시 양공주들의 가게가 모여 있던 집창촌이 있었다. 그때 영욱은 공원을 지나면서 야한 차림의 여자 한 명을 끼고 있는 흑인 미군병사를 보았다. 미군병사는 음탕하게 웃고 있었다. 영욱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그의 마음속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야릇하고 기묘한 불안이 남았다. 그는 그 감정을 품고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이 바닷가로 걸음을 재촉했다.
바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무들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도 없었다. 지저분하고 거뭇거뭇한 모래사장은 그날따라 더욱 황폐하게 보였다. 바다만이 오로지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영욱은 울렁거리는 가슴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바위 위에 주저앉았다. 가끔 망둥이가 잡혔다. 그러나 그는 잡은 망둥이를 아무데나 던져놓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영욱은 해가 질 때까지 텅 빈 머리로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나절이 되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죽은 망둥이들을 꿰어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집창촌은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그는 또 도망치듯이 언덕을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당시엔 젊었던 영욱의 어머니가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영욱은 아무 말도 없이 망둥이 다발을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역시 아무런 대답도 없이 받아들어, 부엌으로 가져가 배를 갈라 피를 빼고 내장을 꺼낸 뒤 마당의 건조대 위에 그 생선 시체들을 늘어놓았다. 붉은 저녁노을이 생선의 반들거리는 비늘 위에서 미끄러졌다. 영욱은 마당에 서서 무표정한 눈으로 그 붉은 빛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기억이 있었다.
영욱의 정신은 다시 버스 안으로 돌아왔다. 바보 아저씨는 이제 영욱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서 킬킬대며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영욱은 묘한 감정에 휩싸인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가슴 속에서 어떤 의문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울컥하는 감정이 우렁우렁 울리고 있었다. 그는 그 바보에게 정말이지 묻고 싶었다. 무언가를 묻고 싶었다. 모든 시간에 대한,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에 대한, <자신>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과 여태 간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영욱이 오십 년을 살아오면서 아직까지도 대답을 알아내지 못한 질문들을 그에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바보>에게 그런 중대한 질문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인지 그 점을 영욱 자신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더 이상의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상념에 빠져 멍하니 서있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교회 앞에 도착했다. 영욱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어머니를 부축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바보 아저씨에게는 아무런 인사말도 남기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내리는 영욱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바보처럼 웃으며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장난에만 빠져있었다.
하늘은 이제 거의 밝아져있었고 새벽빛은 아침의 햇살로 변해가고 있었다. 교회 앞마당에는 드문드문 신자들이 보였다. 버스는 영욱과 그의 어머니를 내려놓은 뒤 출발했다. 영욱은 어머니를 모신 채 멀어져가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고개를 돌리고, 어머니와 함께 느린 걸음으로 교회로 들어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