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섧고 추하고 고독하고

글/시 2024. 2. 27. 11:20 |

섧고 추하고 고독하고


빌라 옆 동 사는 아저씨가 새벽부터 지랄이다
새벽부터
60분 주기로 옥상에 올라서서는
야 이 씨발년들아
받들어! 총!
씨발년들아!
받들어! 날
받들어!

담배 태우러 나갔더니
동네 사람들 웅성웅성
집단을 군중을
대중을 뭐 그런 걸 이루고
웅성웅성
누구는 112에 전화를 하네

당신들 이 동네 몇 년 살았습니까?
다들 수십 번씩
드러낼 거
다 드러내 놓고서는……

그렇게 모여있으니
담배도 못 피우겠잖아

시간은 얼추 오후 두 시
아저씨 다시 한 번 옥상에 나타나고
오우, 쓋
오 마이 갇
오케이, 쏘리

낄낄낄

나는 담배에 불 붙이고

아저씨
받들어줄 사람도 없이
퇴장.

Posted by Lim_
:

호프집에서

글/시 2024. 2. 7. 22:12 |

호프집에서


그러니까 내 말은
작년 유월 구 일에 술을 끊었고 그러나 친구가 이미 수년 전부터
나와 마실 봉삼주를
담가놓고
있었고
그냥 음료수인 줄 알았던
개복숭아청은
알코올이
들어
있었고
논-알코올이라고
새빨갛게 써갈겨놓은
칭따오
캔맥주에도
알코올이
들어
있었다고

그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가 뭔데
친구가 짜증을 부린다

겨울이라 낮이 짧아, 나는
태양이라는 놈이 가라앉은 후에만
담배를 피운다
춥고 어둡고
외롭고
행인이 없고
친구는 가게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고
튀겨버린 닭이 있다

아무튼 쓸쓸하고 음침한 구석만 골라가며
담배를 피우는데
망할 놈의 인간
인간이
아니 행인이

담배는 순식간에 타들어가
시뻘건 나체가 길게 드러나 있다 나는

뛰듯이 그것들의 현실에서 도주한다
지 몸속에 맥주를 퍼붓는 친구 앞에 앉는다
시발, 너
담배 냄새 진짜

시끄러워
접시 위 남의 뼈다귀나 헤집는다
이 미친놈은 친구를 앞에 앉혀 놓고
다른 세상 공놀이에 정신이 팔렸다

그런데 닭이 뼈만 남고
저 미친놈이 빈 잔만 쥐게 되면
나는 또
저 밖 어느 구석으로


친구가 나를 바라보고
너 더 마셔
친구가 나를 바라본다.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