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해

글/시 2021. 12. 23. 23:24 |

남은 해


 형광등 불 밝은 방, 방향제들 곰팡이 퍼지듯 슬금슬금 늘어난다, 거의 죽어버린 커다란 시간이 방에, 이 방에만 몸뚱어리를 눌러놓았고, 네 방에서 시취가 나, 오늘 어머니는 눈 덮인 전나무 모양 방향제를 하나 건네주었다, 시간은 왜 그저 지나쳐버리지 않는지, 지나가려다 발목 잘린 그것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썩고 장판에는 시쳇물이 철벅, 거리고, 의자 위로 피신한 나는 작년 연말을 악몽처럼 꿈꾼다, 같은 표정의 거대한 시체가 전부 썩기까지 걸린 일 년, 다시는 그런 것을 방안에 들이지 않으리라고, 창문을 열고 책을 덮고 늠름하게, 나의 방문이 시간의 관뚜껑이 되지 않게 하리라고, 무척 진지하게 결단했었고, 결단했으나, 한 해 동안 썩어갈 그것이 무너져서, 드러누워 있다, 저녁마다 가족은 지친 얼굴로 방향제며 비누 따위를, 상냥하게, 책장에 탁자에, 올려놓고, 아니에요 어머니, 이 송장 더미는 내 숨통에 묶여 다녀요, 미처 못한 말을 중얼대며, 신년이 되면 숨질 놈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것은 참 거울을 보는 듯하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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