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의 눈

글/에세이 2021. 7. 8. 22:59 |

복도의 눈


 얼마 전, 아래층 복도에 방범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올봄에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자비로 들여놓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303호로 이사 올 때부터, 결국에는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방범 카메라 등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것은 그들이 이사 온 봄날부터 확실했다.
 애당초 303호의 전 세입자가 도망치듯 빌라를 나갔을 때도 그랬다. 그에 대해 입주민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 일은 없었지만, 나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고 확신한다. 문제는 현관을 마주하고 있는 304호에 거주하는 술주정뱅이인 것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 빌라로 이사 왔던 것이 약 6년 전이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매일, 꾸준하게 건물의 모든 세입자를 괴롭혀왔다. 그의 주정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매일 오후 10시가 되면 취해서 소리를 지르며 동거인―어쩌면 아내일지도 모르겠다―에게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1시 30분 즈음 되면 빌라의 1층부터 4층 사이 현관 하나를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는 문을 두들겨대며 ‘도무지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라고 말도 안 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지독한 주정은 새벽 2시경까지 계속되다가, 결국 너무 취해서 기력이 다 떨어진 그가 동거인에게 힘없이 욕설을 하며 곯아떨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일련의 일들이 이 알코올중독자의 찢어지는 목소리와 방음설비가 전혀 되지 않은 건물 덕분에 끊임없이 빌라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불행히도 내가 사는 곳이 4층이기 때문에 그의 ‘주정 시간’이 되면 나는 담배를 피우러 나가지 못했다. 건물의 계단 사이에 있는 복도는 사실 복도라기보다 계단참이라고 불러야 할만한 넓이라서, 그 시간에 건물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주정뱅이와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사소한 불편은 그렇다 치고, 이런 일이 내가 알기에만도 6년은 지속되었는데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곳이 도봉구의 후미진 주택가이기 때문이다.
 경험에 따르면 인천이든 의정부든 도봉구든, 오래되고 여름이 찾아오기만 하면 온 동네에서 음식물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는 주택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 3층의 술주정뱅이는 전혀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사실은 그가 건물에 살든 살지 않든 별반 달라지는 것도 없다. 이 동네에서는 계단과 복도를 서너 차례 거쳐 건물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더욱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사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자신의 개한테 욕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도봉구 살라마노 영감이라든가, 길에서 소주를 마시며 보행자들에게 트집을 잡는 연배를 분간하기 힘든 꼽추, 주말 새벽마다 큰 소리로 발라드 가요를 열창하는 건너편 건물의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만 하면, 동네가 하나로 연결된 정신병동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무엇하러 성가신 일을 감수하며 경찰을 부르거나―우리는 경찰이 이런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민원을 제출하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올해 초에 이사 온 젊은 부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다. 초봄, 그들이 타고 왔던 원색의 빨간 오픈카를 보았을 때부터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이 약 3주에 걸쳐 303호를 개조하고, 새하얀 벽지와 페인트를 바르고, 인테리어 업자에게 연락하는 모습을 보았다. 솔직히 불길한 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부동산 업자에게 속았을지도 모른다. 이 마을의 현관은 각각이 병실 문이고, 마을 전체가 병동의 홀Hall이거나 통로라는 것을 젊은 부부는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사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부부는 304호 주정뱅이와 부딪쳤다. 사실 부딪쳤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경찰서에 전화한 모양이었다. 차를 타고서 경찰 둘이 왔고, 한밤중에 304호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주정뱅이는 1시간이 넘게 서로 버티고 서서 언쟁했다. 다음 날 밤에도 경찰이 왔다. 그다음 날에는 머리끝까지 취기가 오른 주정뱅이가 303호 문을 쾅쾅 두들기며 조롱 섞인 사죄와 차마 말하기 힘든 상욕을 목청 높여 반복했다. 이제 밤 10시가 지나면 빌라의 3층 복도는 도무지 지나갈 수도 없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정말로 피로에 찌들어있었다. 안 그래도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는데, 이런 바보 같은 짓거리가 두세 달 넘게 반복되자 문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밤이 되면 담배는 아주 포기해야만 했다. 그때쯤 나는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폐를 끼치는 저 알코올중독자인지, 괜히 말벌집을 들쑤셔놓은 젊은 부부인지,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며 상황을 깨끗이 해결하지도 못하는 경찰인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혼탁하게 흐르다 보니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한 정치인에게까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바로 2주 전, 303호의 젊은 부부가 3층 복도에 방범 카메라를 설치했다. 첫날에는 고정을 잘못시켜 놓았는지, 벽에서 떨어져 전선에 매달린 채로 허공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발견한 304호의 주정뱅이가 주먹으로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다음 날에는 콘크리트 나사로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약간 다른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 10시가 지나자 혀가 꼬인 주정뱅이가 아래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하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30분 넘게 혼자서 욕하고 고함을 쳐대기에 도대체 무슨 일인가 계단참까지 내려가 보았다. 주정뱅이는 앞집의 문을 두들기며 욕을 하는 대신 방범 카메라의 렌즈를 쳐다보며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거리낄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마치 카메라 앞에 선 배우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연극적인 태도로 추태를 부리고 있었다.
 뭐지, 무슨 상황이지. 이전과는 다른 뜻에서 정신이 어지러웠다. 이 사태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진행될지 전혀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수면제를 삼키고, 소음 속에서 어렵게 잠이 들었다.
 그러나 젊은 부부는 영리한 사람들이었다. 그날부터 이틀 정도, 304호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낮에 작게 나곤 하던 생활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예 사람이 없는 듯했다. 알고 보니 3층의 부부는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경찰에게 제출한 모양이었다. 이 이야기는 1층의 철도공무원에게 전해 들었는데, 철도공무원 아저씨와 나는 평소 건물 앞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친해진 사이였다.
 사흘이 지나고 문제의 술주정뱅이는 돌아왔다. 이전에 비하면 훨씬 조용해진 것이 몹시 놀라웠다. 아직도 밤 10시가 되면 고래고래 소리 지를 때가 있긴 하지만, 현관 밖까지 나와 엄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며 조용히 해달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지는 않게 되었다. 젊은 부부가 달아놓은 그 기계의 효과가 감탄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한 것은 왜일까. 일이 해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나는 3층 복도 벽에 붙은 카메라를 쳐다보며 잠시 멈춰선다.
 그 까만 렌즈가 비추고 있는, 계단참처럼 비좁은 복도에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해결방안이라거나 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도봉구가 모조리 방범 카메라로 뒤덮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안전해진 3층 복도를 지나가면서 나는 매번 머리가 복잡하고, 어서 건물을 빠져나가 담배나 태우게 되는데, 거리는 여전히 바뀐 것이 없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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