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안개

글/시 2019. 12. 25. 14:31 |

겨울안개


밤이 겨울안개로 가득 차면
나는 희희낙락하여 오로지
해가 결코 뜨지 않을 줄로만 안다

시각은 쓸모가 없고, 더욱이
내딛는 발도 절벽 끄트머리를 걷는 듯
내 오감은 불확실의 포로가 된다

그런데 왜 이리도 기쁜 것인지
어디선가 위협적으로 산짐승 울고
이런 밤에, 나는 밟혀 죽은 독사를 기억한다

어둠과 안개가 먹어치운 다리를
쭉쭉 내뻗고, 한 발짝만 잘못 딛었다간
그래, 그 독사처럼 길을 잃고
단숨에 죽어버릴 것이다

보이는 것은 없고, 안개 위엔 먹구름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희희낙락한다
소리도 모조리 죽었어, 나는 이제
혼돈과 비실재 속에서 방황한다

내가 볼 수 없을 때 세계가 어떻게
요동치고 진동하며 천변만화하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코 알 도리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멍청한 다리를 쭉 뻗고!

땅 밑으로의 추락사를 바라는가?
아니면 차라리 내 영혼이 추락사할 것인가?
아니야,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세계가 형체 없어지는 일에 기쁜 것이다

고로 나도 형체 따위는 없고
겨울안개 속에서 내 몸뚱어리는
안의비설신의도 안개에 두들겨 맞아 죽었다
그러므로, 그런 고로

축축한 어둠 속에서 비실재하는 다리만 쭉쭉 뻗는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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