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문 짐승

글/시 2019. 12. 7. 09:26 |

펜을 문 짐승


딱히 겨울하늘이 파랗게 얼어붙었다 한들
그것에 대해 무어 감상이 있지도 않지

마른 숲속에서 도망치는 고라니와 마주쳤다 한들
내게 무어 놀란 가슴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세상은 얼어가고 나도 얼어가고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에 쥔
담배도 이제는 무슨 맛인지
녹슨 울타리 같은 마음으로 궁금해 하지

감성, 감성! 그렇게도 부르짖는
그것이 내게 있기나 했던가
지난여름 비 오는 철교 위에서
나 강물이 얼마나 차가울지 궁금했었지

―이제 그만 쉬어
문학도 예술도 인생의 끝에
그리 중요한 것은 되지 못할 거야
그런 말들에 나는 심장을 난도질당하고

옳은 말이야, 옳은 말이겠지만! 그러나
차가운 바람에 손가락 저릴 때마다
나는 비참한 심상으로
한 가지 싯구를 떠올리고야 말아

저 능선 위의 절벽은 어떤 죽음을
내 정신과 영혼에게 드러내줄까?
수세미를 씹듯이 담배를 물고
나는 이상하고 추운 탐미에 홀려있네

……이제 그만 쉬어
그 말에도, 고통만 읊조리며
펜을 찾아 돌아가는 슬픈 짐승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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