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노래

글/시 2019. 11. 11. 07:59 |

짐승의 노래


산중에 가을비 내리고
담배연기는 커피의 맛
쓰고 떫어, 혀에 들러붙어
분에 안 맞는 사치의 뒷맛 같구나

내 코트에는 빗방울들
껌처럼 눌어붙지
해는 구름이 가렸고,
나뭇잎이 가렸고, 내 마음이 가렸다

신기한 일이지, 담뱃불은
비 내려도 빨갛게 탄다
다만 떨어진 담뱃재
진흙으로 돌아가 회색반점이 된다

입에서 나는 커피와 담뱃진 냄새에
나는 입을 감추고
황급히 몸을 감추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내 둥지로 향한다

질질 끄는 발걸음을
가을비는 붙잡고 늘어지고
질끈 묶은 머리는 비에 번들거리며
나는 도망치는 산짐승 같아라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만 살아왔으니
짐승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바
유아아아 괴상한 울음을 짖으며
지혜로워질 수 있는 날을 망상한다

가을비, 끈덕지게 쏟아붓고
내 코트는 짙은 적색이 되었지
입에 문 담배는 재만 남았네
유아아아, 둥지마저 버리고 싶어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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