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은 죽어가고

글/시 2019. 10. 31. 19:51 |

나날은 죽어가고


오늘도 참으로 아무 일 없었습니다

오후 5시 초겨울 하늘은
흰색 푸른색으로 바싹 굳었고
단지 안의 사람들은
어미가 새끼 손을 잡고 가는데

단풍이 지려나보다, 누가 말했는데
그 말에 처음 나뭇잎을 보고
정말로 그렇구나, 납득하고는
인간들도 단풍이 들지는 않으려나

평상에 앉아 마시는 커피는
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습관처럼 졸린 눈으로 담배를 물며
늙은 개가 묶여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오후 7시, 어둠이 내리면 바깥세상에는
그림자처럼 괴물이 살아
얘야 어서 들어가자꾸나
또 졸린 눈으로 그런 광경을 보고, 암, 그렇지

별도 꽃도 없는 저녁 무렵에는
단풍이 시커멓게 몸부림칩니다
평상에 들러붙은 먹물 같은 나는
이젠 거리에 어미도 새끼도 없구나

담뱃불은 암막에 부유하는 나룻배 같고
구름 낀 천정 밑에는
여기엔 희망도 꿈도 없어, 미래는 니코틴처럼 소화되고
바람은 후우우 루우우 울기만 할 뿐

죽음을 기다리나? 굳이 그렇지도 않겠지
단지 어디선가 밥하는 소리는 들려오고
따뜻한 정종 한 잔 마시고 싶긴 하나―굳이 그럴 일도 없지
후우우 루우우 울며 나날은 죽어갈 뿐

오늘도 참으로 아무 일 없었습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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