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글/시 2019. 10. 30. 02:56 |

애가


내륙의 밤에 모두가 잠드는 시간에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 콘크리트만큼 차가운
내가 평생 바라기를 마지않던 육신이
거기에 누워있다면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인형은 누구든 될 수 있다
뇌파가 끊기고 전기신호가 끊기고
우연이 만든 가장 적절한 시간에
당신을 누구보다 사랑할 내가 거기에 있기만 하다면

별빛이 비추는 암청색 거리에
인형 하나가 버려져 있다

별빛이 비추는 암청색 거리에
별빛만큼 조용한 인형이 있다

분명 어떤 어린아이가 흘리고 간 것이겠지
그러나 왜 흘렸는지는 모른다

단백질, 칼슘, 지방, 그런 것들은
무기물보다 달빛에 더 빛나는 성질이 있다

철분, 초산, 스테인리스스틸, 그런 것들은
달 속에 녹아들어 현상을 더 아름답게 한다

인간은 밤에 태어났음이 틀림없다
본성은 평화롭고 광막한 것이다, 마치
당신이 눈을 감는 시간에 어둠이 내리듯이

영령은 떠났다. 그러나 영령이 떠나도
아름다움은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미학이라는 것은
그로테스크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지구가 하나의 묘지라면
거기 묻힌 뼈들의 웅장함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환경주의자들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인형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그 칼슘이 만드는 요철이나
날붙이 끝에 벗겨지는 콜라겐에 대하여
그 침묵하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굳이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을 것이다

이제 알았다, 난 인본주의자였다

영혼이나 정신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다
인간은 인간에게 에로스가 절제된 사랑을
그러나 아가페라는 성역으로 갈 이유도 없는 사랑을 할 뿐이다
온갖 파토스를 통하여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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