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정리

글/시 2019. 5. 9. 19:18 |

제 1 정리


담배 술 마약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시간에게서 도망치려고 매듭도 묶었다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결심으로 체내의 피를 전부 꺼냈다
폐는 썩었고 간은 문드러졌고 심장은 텅 비었다
맹장 한 조각도 인류를 위해서는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각막은 계단참에서 쓰러졌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수치와 통계 너머의 잔혹함만 보인다
이것이 21세기의 그노시즘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신이 되는 방법은 없다, 애당초 신이 없다
여러 번에 걸쳐 게르만족에게 맞아죽었다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초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초인과 감정 없는 정신병질자의 차이를 모르겠다
애당초 그 차이를 감각할 수 있다면 아직 인간이다
사팔뜨기 철학자를 비웃으며 세계를 분해했다
꿈속에서 느끼는 사랑은 꿈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꿈에는 논리가 없다, 논리가 해체되면 웃음만 남는다
더러운 옥상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이 우주에 높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찾았다. 이게 우울증 환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다
이것은 거대한 하수 시스템이다
추락하고 역류하고 흐르고 다시 사용된다
인류애라는 단어를 입술에 달고 사는 이들에겐 주머니칼을 흔들어보였다
하수구에 사는 쥐들에게도 사회와 유대가 있다
영장류들은 머리가 좋을수록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다
혼돈은 혼돈으로밖에 정의되지 않는다
그래도 감각을 사랑하려고 했다, 육신에서 잘라낸 영혼은 필요없다
순간을 송두리째 느끼려고 했다, 필멸하는 존재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타락 모순 퇴폐 악의 증오 원한 자멸 불신
이 퍼즐들은 자기소개의 액자에 도무지 들어맞지 않는다
다시 돌아온다, 바텀라인bottom line은 또 혼돈이다
그렇다면 골라라, 무관심하거나 혼돈을 가중해라

당신이 성모상에게 꽃을 바치는 와중에도
이 행성에서 사람들은 짚이 쓰러지듯 죽어간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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