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

글/시 2019. 5. 9. 01:33 |

휴머니즘


양장으로 된 시집들에는 곰팡이가 슬었고
싸구려 시집들만 커버가 멀쩡하다
은박까지 입혀져 거금 구만 원이 들었던 톨스토이는
내 위악을 위하여 불태워버렸다
중고책방에서 이천 원에 구한 헤르만 헷세는
내 책장에서 가장 늙은 책이다

곰팡이 핀 것들을 다시 꽂아놓고
불타고 남은 재는 성당에라도 바쳐야하나?
이미 너무 많은 유령들과 만났고
심지어 그것들은 내 집에 산다
그들과의 대화는 내게서 피와 살을 앗아간다고
충분히 현명한 이가 말했지만

이제 작별이다! 몇 번을 고해도
그들이 떠나지 않는 것은 아마
이미 내가 그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길거리에서 어느 노인이 급사할 때
가던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나는
1분마다 몇 명의 사람들이 죽는지 셈할 수 있었다

책장은 창문과 거울, 심지어는 현관까지 막아버리고
나는 선악을 믿지 못하니
곧 위악을 행하고
고로 악이 되고
그래서 성냥불을 그었던 것이다

돌과 모래밖에 없는 별로 가야해

라고 중얼거리며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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