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십구년의 한 조각

 

 

더는 사람구실 못하게 될 만큼 남들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하다가 마침내 사람구실 좀 하고 살자는 마음이 들어 달력을 보니 달력 읽는 법도 이미 잊어버렸고, 아들 너 도대체 언제쯤 취직할래? 니 아부지 이미 영감님 다 됐는데 뭐하자는 거야, 사람구실 하자는 결심은 섰는데 살면서 사람구실 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어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괜히 착잡해서 대마나 한 대 빨고 싶은데 대마 살 돈도 없다.

 

마지막으로 원고에 손 대본 게 아마 5주 전이지? 이젠 스스로 작가니 시인이니 하는 것도 구라야 새꺄, 아주 자기정체성에 사기 치는 거라고, 거울 보면서 주절대는데 그 와중에 담배는 피우고 싶어 어슬렁어슬렁 연기 뿜으며 골목으로 나가면 도대체가 이 막다른 도시는 변하는 게 없고, 날이 저물고 부모님 내일 직장 나가려고 잠들면 혼자서 외로움이나 마시러 간다. 세 시간 뒤에는 이미 상할 대로 상한 위장이 새벽골목에 토악질 하라고 시킨다.

 

차라리 예전 같으면 산사에서 뒤지게 마시고 취한 채로 불상 끌어안고 펑펑 울었을 텐데, 더 젊었을 때는 새벽 네 시에 동네 비구니 절 쳐들어가 주무시는 스님들 다 깨우면서 부처님 앞에서 울면서 절도 했다. 참회하러 가서 악업만 더 쌓았다. 그런데 이제는 쌓은 악업이 허용량을 넘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이 좁아터진 욕계에선 도무지 도망갈 곳이 없고, 나 혼자 법륜에서 튕겨 나와 추락하고 있다는 믿음이 위안이다.

 

같은 중학교 다니던 용훈이는 벌써 몇 년 째 빙상장 얼음 갈고닦아 가족들 먹여 살리고, 문학적 신념 차이라는 지랄보다 못한 이유로 5년 전 서로 두들겨 패다 연락 끊은 영권이는 알아보니 예쁜 마누라 만나서 애 낳고 알콩달콩 산다고 한다. 그동안 난 뭐 했나 고민해보니 아무래도 난 여기에 있던 게 아니라 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랑 암스테르담 들락거리며 알제리에서 살았던 것 같네, , 진눈깨비 맞으면서 아니스 빚느라 손이 다 뭉개졌지. 그거 알아? 암스테르담에선 카페에서 대마를 팔아, 시간 나면 네덜란드 시민들 행복도 설문조사 한 번 해봐.

 

언제부턴가 하늘이 하늘로 안 보여, 그러니까, 하늘을 보면 그게 하늘이라는 걸 알기는 아는데, 저게 도대체 뭣 때문에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지, 머리 위에 파란 하늘이 아니라 콘크리트가 깔려있어도 다를 게 없을 것 같아, 옘병…….

좀 닥쳐 시발. 나 이력서 쓰는 중이야. 중학교 동창 중에는 유일하게 나 같은 백수인 종인이가 일축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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