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글/시 2018. 1. 3. 19:22 |

회상



열다섯의 다락방, 시린 겨울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기뻤다

창문은 하얘

밖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그는 너무 거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십 년 뒤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이미 죽은 시인들은 널 구해주지 못해

두들기는 문마다 부재중이었다.


망령처럼 스스로를 홀리며 살아온 십 년이 십일 년이 될 때

너무 늙은 소년은 너무 어린 성년이 되고 있었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바랐고

그러나 어딜 가도 똑같은 풍경에

똑같은 골목, 막다른 길

당장 필요한 것이 한 줌의 지폐인지

또 한 장의 텅 빈 종이, 그러니까 즉

또 한 장의 공포인지

하릴없이 서있자 증오를 받는다.


술과 담배. 수면제와 자낙스. 눈앞에서 쏟아져 내리는 현실.

너를 마구 할퀴고 쥐어뜯으며 갈기갈기 찢는

아, 너구나. 울증 속에서 너는 너와 마주하고

손에는 술, 담배, 수면제와 자낙스.

입이 떨어지지 않아 내뱉어지지 않는 「굳바이」 한 마디


꿈속에서 열차를 오래 탔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동차건 버스건 열차건

바퀴 달린 것들은 하나같이 질색이었다.

마침내 내려 플랫폼에 토악질을 하고 뿌예진 눈동자를 치켜세웠다.

어딜 가든 낯선 고장이다. 「Home」 이라는 단어는

너무 장황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야말로 내 손으로 집필한

길고 장황한, 이해되지 않는

한 문장뿐인 나의 검은 책.


열다섯의 차가운 다락방에서 혼돈을 해소하려고 쓴 글귀들은

아직까지도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여기 서서, 증오를 받는다.


낫과 망치를 들고 싶었던 앙상한 손에, 술과 자낙스.


“성자聖子가 되는 방법은 분명히 알고 있어. 명상과 수련 속에서 어렵사리 알아냈어.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항상 문제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술집이 문을 닫기 전까지는 우리도 괜찮다. 약병이 바닥을 치기 전에는 우리도 바닥을 치지 않는다. 하늘에선 별들이 밤 위를 기어간다. 아주 느린 속도로. 그것이 십일 년 간 반복됐다. 별들은 흩어지며 형태가 불분명한 여럿의 빛이 되고,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우리 자신을 원망한다.


도스토예프스키나 고골이 살았던 소련은 우리가 알았던 소련과 다른 소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열차 타는 것을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으로, 듣자하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항상 진눈깨비가 하얗게 쏟아지고 거꾸로 치솟는다지만

플랫폼을 여행의 목표로 삼는 나로서는.


깜깜한 겨울. 봄이 와도 죽을 수 없으므로 여름까지 살고, 그러나 너무 덥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는 죽을 수 없으므로 가을까지 살고, 그러나 낙엽들 사이에 시체 한 구를 더하는 짓도 도무지 못할 짓이고, 또 깜깜한 겨울.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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