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날

글/시 2017. 9. 9. 10:55 |

보름날



오래된 패배의 습관들이

절망을 부르짖으며 늑골 안에서 헤엄치던 날

나는 너무 지쳐 주머니칼을 꺼낼 기력도 없었고

그리하여 참으로 몇 년 만에

눈물을 흘려보고자 결심했다


노을이 뒤덮은 산등성이에서

담뱃불은 그 노을처럼 새빨갛고

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물샘에서

그 투명하지만 맑지 못할 수액들을

끄집어낼 준비를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리며 살아왔고

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며 살아오는 와중

눈물을 흘리는 방법도 홀연히 잃어버렸고 잊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무기력하게 앉아 슬퍼하는데

해가 떨어지고 말았다


산속의 밤은 어둡고

담뱃불은 힘없이 꺼졌다

시간은 나를 스쳐지나가기만 하였구나


원망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하늘로 향하자

아, 보름달이다. 어떤 밤보다도 청명한

나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 맑은 만월이

나를 대신 울어준 것에 대하여.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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