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절망

글/시 2017. 7. 30. 20:34 |

밝은 절망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은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를 실감케 한다.

구형으로 이 행성을 둘러싼 우주의 별빛은 내가 나로부터 얼마나 먼지 알게 한다.

불이 빛나는 시간은 밤뿐이다.


이 땅의 적막이 사실은 얼마나 시끄러운지

소리를 귀로 듣지 않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겠지

한 가지 행운이라면

매일 어둠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수 없는 저주들 중 하나는

매일 어둠이 물러간다는 사실이다

사색에 잠겨 단도를 놓은 철학자도

태양의 폭력 아래에서는 다시

칼을 잡는다, 흐르지 않는 눈물로.


한 마리의 뱀이 되었으면! 그것도

한겨울의 땅 위를 방황하는 뱀이.

그 냉혈동물들은 알고 있다

눈에 비치는 것들은 송두리째 허상이며

벼린 칼끝 같은 냉기 속에

<느껴지는 것>들만이 질료를 가지고

텅 빈 우주 안에 묵묵히 실존한다는 것을.


사람이 영원한 태양을 갈구해 불을 지필 때부터

우리는 수천 년의 절망 속에 스스로 빠져든 것이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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