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羽化의 서곡

글/시 2017. 7. 26. 20:09 |

우화羽化의 서곡



증오의 눈을 부릅뜬 채 신과 맞대면하던 삶은 그 어찌도 편했는가!


만일 하늘이 수직으로 쏟아져내려오는 것이라면

나는 향일성의 저주가 되어 산산조각나리라고

내 젊은 피는 열망했었네, 그리고 정말 그러했으니!


그러나 세계는 하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나 역시

하나의 인물이 아니었다, 한때 악마 들린 손으로

펜을 쥔 채 종이 위를 종횡무진 하던 젊은이는 어디서 죽었는가?


나의 광기는 비명으로 짠 고치였네! 그것을 찢고 나오자

그간 안락하게 날 감싸던 수천 줄의 비명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 황망한 세계에 주인 없는 눈동자처럼 굴러 나왔네


수만 겹의 사막과 수억 단의 대양 위에서 토혈하고

그 울컥이며 나온 새까만 피들이 화들짝 놀란 벌레 떼처럼

모든 세계들로 바삐 도망가는 것을 보니, 이미 내 몸엔 피가 없어라


절뚝이는 걸음으로 찾은 못에서 온 혈관을 잉크로 채우고

깃발도 없이 돌진하려 했건만, 알고 보니 벽은 세계가 아니어라!

열 손가락 끝에서 방울방울 잉크가 흘렀다. 나침판은 계속 회전한다!


천상천하 어디에도 갈 곳이 없네, 나는 주저앉아

깔고 앉은 모래알 하나를 집어 들자

악마를 잃은 천재들이 그 안에서 수도 없이 몰락해가는구나!


너무 무수한 세계에서, 미학을 위하여! 아니! 전쟁을 위하여!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니었다! 가슴을 열자 튀어나오는 것들은

지네들, 바퀴벌레들, 피처럼 붉은 루비, 그리고 멈춰진 작품들 등등……


구제를 원하는가? 그럼 부디 나의 반대편으로 가라!

나는 이곳에 세워진 저주받은 이정표다. 그것은 도망친다!

저쪽으로,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낙인찍힌 화살표처럼.


아! 아름다움이라는 눈동자가 감겼다. 나는 이제 거기에 못을 박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노래를 부르네, 사랑과 멸망의 노래, 가사가 하나 뿐인 노래

끝나지 않는 영혼의 백색 어둠, 그리고 잃어버린 열광, 그리고


불멸의 피. 피. 피. 피.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