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침엽수림

글/시 2017. 7. 23. 16:10 |

어느 침엽수림



1.

나는 침엽수림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은 햇빛이 비추지 않는다.


2.

이곳에서는 너무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모든 빛을 가려

굳이 굴을 파고 살 필요가 없다. 그저 풀밭에

누우면 항시 밤인 이 숲은 전체가 나의 집이 된다.

그러나 나의 집이라고 해서 나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이 살기에는 나무와 나무들 간의

간격이 너무 좁아 이 숲에는 벌레들과,

방랑하는 제신들과 나만이 살고 있다. 다행이 나는

몸집이 작아 숲속을 자유로이 거닐 수 있다.

내가 밤눈이 발달한 것도 분명 이 숲에서 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태양빛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나무들은 빛을

봐야만 하기 때문에 끝없이 키가 커진다. 차라리

한 그루의 나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닥다닥 붙은

이 나무들은 서로 죽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키가 큰다

나는 이 숲의 정상이 어디인지, 또 이 숲이 어디까지

펼쳐져있는지는 모르나 경험에 따르면 나는 절대

숲의 바깥이나 꼭대기로 올라갈 수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사방에 길이 나 있지만

어느 각도로 보든 시야는 결국 또 다른 나무에 가려진다

그래서 이 숲에선 적의 공격에 방비해야한다는

의식조차 가려진다. 가끔 시야를 지나가는 영령들이나

희미한 빛을 내는 제신들은 그저 돌아다닐 뿐

내 삶에 아무런 방해도 주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들로 인하여

이 숲이 침엽수로 만들어진 성소라는 것만을

어렴풋이 생각해볼 뿐이다. 나는 주로 벌레들을 잡아

먹으며 사는데 그들은 눈이 없다. 장님인 벌레들을

이빨 사이로 자근자근 씹는 일은 사실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달리 내가 무슨 양심이라도 가져야

한단 말인가. 가끔 비가 오면 나는

잎들의 향기를 한껏 머금은 채 떨어지는 그 물방울들을

성수 맞이하듯이 마신다. 빛이 비추지 않아 오늘과 내일의 경계조차

없는 숲이어 나는 도대체 내가 얼마간 여기에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분명 나는 죽지도 않을 것이라는

불멸에 대한 알 수 없는 확신이 내 머릿속에 있다.


3.

그 숲은 너무 크고 울창해 보고 있노라면

녹색의 바다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것은 분명 생명과 활기가 넘치는 땅일 터이지만

보이는 바로 완전히 어둠뿐인 그 수해樹海는

차라리 거대하고 봉인된 죽음으로만 보여서

나는 그 숲에 무언가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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