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멸

글/시 2017. 7. 23. 16:09 |

점멸



공허의 수레바퀴 아래 서면

만물이 다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하다

수레바퀴가 한 바퀴를 돌면 영혼이 니코틴에 젖은 듯

명백히 사물은 치명적인 빛깔을 내는데

또 한 바퀴를 돌면 세계는 가라앉고 소멸되어간다

마루에 앉은 나는 사라지는 세계에 겁을 먹어

덜컥 눈동자를 한 바퀴 돌리지만

뒤집어진 동공은 이미 나의 썩은 뼈를 보고 있다

공포에 숨이 막혀 목청을 틔우려 하면

이미 수레바퀴는 한 번 더 돌아, 세계는

거짓의 색으로 찬연히 빛난다. 그런데 그 거짓이야말로

진실의 그림자라서, 나는 늘상 보아오던 그

진실에, 너는 역시 그곳에서 수천만 년 모독의 시를

읊어왔구나 하고 은전 같은 세계에 슬퍼하는 것이다.


언젠가 빙하기가 오리라고 도시에 사는 나는 자신만만 주장해왔다

빙하기가 오면 공허의 수레바퀴에도 눈이 쌓여

그 운동의 소음이 끼익거리며 들릴 터이고

하늘도 땅도 지평선도 수평선도 눈빛으로 뭉쳐져

앞뒤로 뒤집히는 은전 같던 세계도 한 덩어리가 되리라고


그는 계속 외치고 있다: 빙하기가 오리라고

그러나 나는 산중에 앉아 어제만 해도 향일성의 열광으로 태양을 보던

해바라기가 오늘은 죽어 땅으로 고개 숙인 것을 관찰하고 있으니

도시의 그에 대해 내가 느끼는 바는 도무지 말로 하기 힘든 일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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