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의 성자聖子

글/시 2017. 7. 18. 23:40 |

악덕의 성자聖子



1.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K의 이야기는 틀림없이 많은 독자들을 나로부터 떠나게 할 것이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부터 12월의 눈보라까지 K는 늘 악인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안타까운 일은 내가 K를 그다지 악인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천성은 헤엄을 멈추면 죽는 상어처럼 처절하고 잔인하였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하는 내가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피 냄새를 맡으면 피가 흐르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희미한 별이 내려준 잔인성이 아닌가 싶다. 대양은 난폭할 때도 고요할 때도 있지만 어쩐 일인지 대양에 사는 것들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난폭하기만 하다. K는 신이 자신에게 악인의 낙인을 찍기라도 한 듯 송곳니를 드러내고 불경한 주먹을 쥔 채 평생을 살았으며 인간의 자비를 믿는 독자들은 몹시도 그를 증오하리라.


2.

내 삶은 독물과 지네 따위의 해충들이 무릎까지 넘쳐흐르는 끔찍하고 흥청거리는 사육제였다. 가끔 그 독충들은 내 늑골을 열고 나의 심장 속에 둥지를 틀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누가 삶을 마음대로 갈아치운단 말인가?

내 삶을 독충들의 둥지라고 단언하는 것을 오만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의 혀는 이미 독두꺼비의 혀처럼 늘어나버렸고 내 타고난 혐오로 인하여 당신들을 소름끼치게 싫어하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처음 그 독물과 해충들의 즙을 흠뻑 마셨을 때, 내 살은 아직 여리고 내 눈동자는 회색으로 영롱했었다. 그러나 곧 불거진 뼈들이 살과 근육을 뚫고 위협적으로 튀어나왔으며, 내 어렸던 눈동자는 독을 가진 파충류의 눈동자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눈물을 흘리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슬픔을 배출하는 것과 가장 비슷한 일은 내 피부를 째어 검은 피를 흘리는 것이었다.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나의 입맞춤에 숨을 거뒀다. 끔찍한 독이 그녀의 피부 속으로, 혈관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나는 환희하며 적도의 샤먼 같은 춤을 추었다.

그 뒤로 모든 아름다움들이 일제히 눈꺼풀을 열었다. 그녀들은 품에 안으면 하나같이 안구가 없는 눈구멍과 힘없이 열린 입으로 새까만 독을 뚝뚝 흘리며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미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름다움들을 독차지한 기쁨으로 나의 삶은 한 점의 두려움도 없게 되었도다! 나는 죽음이 내 육신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예술가 같은 마음으로 나는 온 마을의 그늘에서 살았다. 밤이 오면 희멀건 빛이 비추는 창문으로 다가가 병에 걸린 아이들을 구경하고 건강한 아이들에게는 유혹의 손길을 던졌다.

독과 해충의 즙이 내 가죽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린 것이 분명하다! 나는 걸어 다니는 소라껍질이었고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였으며 그 안에 있는 것은 형태 없는 저주였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도 치명적인 자유였고 터져 흐르는 기쁨이었다.

나는 햇볕이 비추는 낮에는 그늘 밑에서 망가진 수레바퀴처럼 홀로 산다. 그러면 아무도 나를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러나 밤이 내리면 나는 내 나라가 도래했다고 사방팔방으로 굴러나간다. 나는 주로 밤에 길을 잃은 어린아이들을 먹고 산다. 아이들은 연하고 부드러워 그 무엇보다도 악덕에 물들기 쉽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아이들이 곧 날카로운 비수를 쥐고 부모살해를 저지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나를 즐겁게 한다. 나는 내 나라에서 부족함이 없이 산다.

가끔 어두운 십자로에는 나의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나는 굳이 그것을 주워 모으지는 않는다. 내게는 이미 별 필요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흩어진 그림자들도 나름의 나이기에 그들이 하는 일 역시 매우 흥미롭다. 그들은 매번 불경한 노래를 중얼대며 방랑자가 오는 것을 꿈꾸고 있다.

어둠 속 공허에 앉아있을 때 이따금 나의 아버지가 내게 속삭인다. 오랫동안 그가 누구인가를 고민했고 나는 마침내 그 답을 찾은 것이다. 그는 저 하늘에 있는 영령들의 유일한 주인이었고, 틀림없이 그가 나를 이러하게 낳은 것이다.


3.

고해실의 문이 굳게 잠겼는데 그것은 분명 주님의 짓이다, 라고

그는 자신만만하게 웃는 얼굴로 주장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물을 수 있었지만 그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또한 손에 불을 쥐고 있다. 그러나 그 불은 그의 형제가 쥐었던 불

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하고 있기에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가 과연 죽기나 하는 것인가 하고 다시금 고뇌에 빠진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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