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행성에서 보내는 어떤 휴가



방랑과 방탕의 때여 안녕, 그러나 그들은

내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져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디선가 무언가가 타는 냄새뿐이다.


인간들은 많은 피를 흘렸고 또 더 많은 피를 갈구했다

삐걱거리는 육신으로 삽을 들고 땅을 파면

샘솟는 지하수인 듯 선혈이 쿨럭거리며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는 진짜 태양을 찾아 헤맸다

수채화 같은 산중에서 독처럼 센 술을 마시고

담배를 입에서 뗄 줄 모르며 널브러져 잠들었다.


오, 전란의, 뒤집어진 군홧발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악신惡神을 만들어 섬길 것이다

쥐들은 도망치고 산짐승들은 더 깊은 굴로 몸을 숨겼다.


내 가엾은 선조들의 피에 섞인 원한은

오직 나만을 나병환자 피하듯이 피해갔다

나는 돌연변이였으며 영원히 돌연변이이리라.


버석거리는 땅 위에서 다시 총성이 울린다면―과연 그것은 울리고야 말겠지만

나는 어디에도 없는 태양 밑의 어디에도 없는 해변으로 갈 것이다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가 역마살 들린 자의 평화인 것을 어찌 설명하랴?


그러나 내가 전연 친애하지 않는 사람들이여, 나는 질책하는 것도

환멸에 떨다 떠나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이 보기에 내가 이방인인 만큼

나도 이 모든 문명과 민족들에 대해 이방인이다.


인간들의 몸속에서 숨어있던 악령들이 늑골을 열어젖히고 빠져나와

그들의 발자국을 대지에 찍는 것이 훤히 보인다.


나는 언제까지나 방랑에 대해서조차 방랑자이리라.


나는 오늘 밤에도 산중에 앉아 불길에 휩싸인 행성을 꿈꾼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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