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가 예정된 환희

글/시 2017. 7. 7. 15:18 |

익사가 예정된 환희



한 모금의 물을 위해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


별조차 찾아오지 않는 어두운 대양에서

나는 뭍도 찾지 않고 헤엄쳐왔다

허파로 흘러들어간 바닷물들은 불길이 되어

내장을 태웠다


파도에 닳아 뼈가 튀어나온 내 팔다리는

그럼에도 수영을 멈출 줄 몰랐고

나는 기침을 뱉으며 새까만 바다를

직선으로 헤매고 또 헤맸다


너무 어두워 수평선은커녕

내가 잠긴 바다도 보이지를 않았다

검은 하늘과 검은 대양은 하나 되어

나는 공포의 공허를 헤엄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파도는 집요하게 내 뼈를 깎고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바닷고기들이

나의 살점들을 뜯었다 점점 나는

헤엄치는 백골이 되어갔다


어디에도 눈동자 같은 것은 없었다

달과 별은 뜨지 않고 물고기들은

너무 오래 심해에서 살아 눈이 없었다

나는 감겨진 세상에 있었다


태어난 이래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뻤다

자신이 왜 수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근육과 뼈가 파도의 이빨에 뜯겨져나감이 기뻤다

뭍이 없어 기뻤고 빛이 없어 기뻤다


지느러미도 아가미도 없이 헤엄치다 죽어 닳아가는 것이

기뻤다 어디에서 와서 이 폭풍우치는 지옥을 건너는 것인가

알 수 없어 기뻤다


불길에 허파가 화끈거려 용암 같은 기침이 터져 나오고

순간순간 힘이 빠져 가라앉다가 비참한 소생의 숨을

가쁘게 들이마시고 다시 팔다리를 휘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이

기뻐 환희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세계의 맨 얼굴을 보지 못하고 두 다리로 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환희를 모를 것이라고

나는 익사의 고통에 눈물 흘리며 소리쳤다

세계라는 저주와 맞대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썩어갈 것이라고


우리들의 실존은 해류의 한 조각 정도다.


나는 단 한 번도 살려달라고 한 일이 없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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