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아이

글/시 2017. 6. 15. 05:38 |

세계의 아이



그것은 한 줌의 화약이었고 불어오는 폭풍이었고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지진이었고 터져 흐르는 용암이었다가

마침내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새벽 네 시의 흰색과 검은색의 구둣발들 사이에서

군청색으로 휩쓰는 어둠이었고 침묵하고 있는 재앙이었다

더러는 재앙이기를 갈망하는 움찔거리는 심장이었다


심연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사물들 같은 세상에서

그는 거대한 조소를 믿었고 그것을 경멸하며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선지자였다


짐승들은 무의식의 기쁨을 포효했고 마천루들은

굽어 내려다보는 콘크리트의 눈동자였고 그러나 다만

인간만이 직선과 기하학을 찾아 말라가고 있었다


총탄이 활개를 치는 전쟁터에서 그는 홀로 도끼만을 들었고

죽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를 비껴갔다 그는

살과 뼈와 피와 새끼손가락을 걸었고 그래서 절대 총을 들지 않았다


마침내 한 줌의 화약으로 돌아가 부스러지며

철모 밑에 깊게 묻힌 그것은 가끔씩 천공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잔악하게 폭발할 것을 그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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