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늘 짧았다

글/시 2017. 5. 9. 02:48 |

젊음은 늘 짧았다



정오의 용암 같은 태양빛 아래 술통 위에 앉아있을 때, 나는 <천재>라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악마가 나의 눈꺼풀을 찢어 결코 눈 감을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노련한 통장이가 불길로 굽힌 판자들로 단단히 형태 지어진 술통을 나는 거칠게 걷어찼다. 주황빛 광장에 둔탁한 소리가 터지고 밤이 내렸다.

나는 모든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젊었던 내 피들은 부글부글 끓더니 정수리를 통해 증발해버렸다. 이제 늙고 거뭇거뭇한 심장으로 나는 야밤의 빛살들을 보았다.

아름다움은 모든 곳에 있었으나 그림자와 거짓이, 그리고 혐오가 그것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광부처럼 나는 곡괭이를 쳐들었다. 「이 마을엔 나밖에 없는 모양이야. 아니 이 마을뿐만이 아니라……」 깨져가는 흙벽 사이에서는 선혈이 꿀럭거리며 기침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 달빛은 인간을 미치게 한다지. 내 곡괭이는 달빛에 세게 맞아 부러졌다. 나는 떨어진 보석들을 주워 모았으나 그것들은 이내 꿈틀거리는 역겨운 벌레가 되어 나의 손바닥 가죽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오열嗚咽을 위한 계절만이 끝없이 계속되었다. 내 곡괭이는 처참히 부러졌다.


벚꽃이 피면 쌍뜨뻬테르부르크로 걸어서 가자. 그곳에는 꽃잎이 날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눈감을 도리를 잃어버린 내 눈은 시뻘겋게 핏발이 서 광견병에 걸린 개의 눈 같았다. 나도 분명 공수병에 걸린 것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물 흐르는 소리가 이렇게 두려울 리 없다. 그 소리는 내 뇌수에 이 행성의 나이를 삽입한다.

절망의 손이라도 잡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는 나의 오랜 친구였고, 내가 그를 떠나게 만들었다. 곡괭이도 부러진 마당에 나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손도끼로 나의 양손을 끊으려 했으나, 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언젠가는 이 손으로 묻어야 해…… 그러고 나면 대지는 더 이상 나의 편이 아니게 되겠지.

길이 아닌 곳만을 찾아 걸어온 다리는 너무 지쳐있었다.

너무 오래 비명을 참아 입가에서는 피로 된 거품이 들끓었다.

<천재>라는 말을 불신하게 된 이후 처음으로, 나는 다시금 펜을 찾고자 했다.


열광! 열망! 갈구! 그러나 그것은 너의 말이다. 내 영혼은 침체의 바닥을 핥아보았다. 그리도 찬란한 너의 머리를 언젠가 금강반야의 도끼가 부숴버리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그리도 아름다워서, 처참하게 피 흘리며 죽어야만 하기에.

언젠가부터 해가 뜨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일이다. 지금 나의 육신은 햇빛을 받는다면, 만약 그렇다면 산산조각으로 깨지며 굉음을 단말마로 삼고 말테니. 아니, 차라리 그렇게 하라. 차라리 날 수류탄처럼 터지게 하라.

북쪽으로 가는 길은 멀기도 하지. 그러나 그곳에선 영원한 먹구름 아래 진눈깨비만이 시간도 잊은 듯 나릴 것이다. 만약에 내 기억이 맞다면, 어느 가난한 이와 푹푹 나리는 눈과 아름다운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재들이 거기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도 따위를 올리러 가는 것이 아닌걸. 죽음이 하는 일들에 침을 뱉었으니 나는 차라리 신도 여신도 없어서 살고 또 사는 것인걸.


땅 밑은 온통 피바다와 잿가루. 오늘도 쌍뜨뻬떼르부르크에서는 잿가루가 푹푹 나리리라. 거기선 내 영혼도 얼어붙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무거워지겠지. 손에 든 펜으로 나는 내 몸에 시구를 새긴다. 종이에 쓴 것들은 불타고 만다. 그러나 이 몸도 불타고 말 것인데, 아니 나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

고되서 앉았다. 풀섶에 털퍽 앉았다. 밤벌레들 산만하고 하늘엔 달만 고고히 떴다. 나는 이제 <천재>가 무슨 말인지에 대해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마음 가뿐한 일이었다.

진눈깨비와 재가 흩날리는 공백의 도시까지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 남았을까. 목적지가 정해진 방랑에 나는 늘 혼자였다. 누구라도 나타나 입을 열라치면 나는 그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셈이었건만, 아무도 없었다. 하하. 여기가 어디로 가는 골목인지는 모르겠으나 날씨는 점점 춥다.


바다에서 도망치려면 뭍으로 가야지. 바다가 보이지 않는 내륙의 내륙으로 가야지. 북녘의 땅에 무엇이 있든

나는 점점 여위어간다.

나는 굳이 나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소연할 필요도 없음에, 즐거운 일이다.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