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그림자는 말이 없다



어디로 가려는가 하고 그들은

물었다

「나는 시냇물 한 모금이면 되오.」 사내는

침묵을 지키고자하는 절망적인 노력 끝에

한숨처럼 내뱉었다 그들은

언어가 아닌 것을 믿지 않는 이들이었기에


무엇이 되려는가 하고 그들은 물었다

수척한 얼굴의 사내는

눈동자를 길게 떴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걸친 낡은 옷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실밥이 터지고 헤진 그 옷들은

분명 대답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황혼이 벽돌담 위에 깔리고

시계의 시침은 조용한 광란을 가리켰다

「나는 무척이나 피곤해,

담배를 피우게 해주시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사내는 호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의 불꽃을 그는 성령聖靈 보듯이 보았다


하늘이 내려앉는 것을 보니

곧 저 거대한 돔도 무너질 모양이야, 사내가

연기와 함께 중얼거리고, 거의 개의 눈처럼

동의를 구걸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비참한 고독이 그의 심장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구나!

염소의 눈을 가진, 대중들과 마주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처절한 고독이 그를 무너뜨리는구나

오래전에 그의 영혼이 떨어졌듯이

담뱃재가 나긋이 떨어졌다


한 소절의 노래가 듣고 싶다, 종달새의

인간이 만든 화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저귐이 듣고 싶다

풀잎이 피어나는 소리가 듣고 싶다, 구름의

쇳빛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싶다. 사내의 얼굴은

점점 수척해지고 하얗게 말라

마침내는 사라질 것 같다.


「저 친구는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동시에 꽤나 이상한 친구지.」 연기를 뿜어내며 골목

사이로 괴물처럼 발걸음을 내딛는

사내의 등을 보고 그들은 서로 속삭였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죽장정이 된 손안의 책을

더 단단히 붙잡았다.


오늘 밤에야말로 시계가 멈추지는 않으려나?

이상한 사내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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