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지저귐

글/시 2012. 11. 12. 06:17 |
새벽, 지저귐


내게는 칼깃이 잘린 날개가 있다
내 둥지는
밤새 내린 비에 젖었다
그것은 나무 밑
진흙탕 속에 빠져있다

나는 공연히 몇 번인가 날개를 퍼덕여보지만
나는 안다

여우야 너는 어디로 가느냐
칼깃이 잘려 날지도 못하는 나를 두고
어디로 사냥을 하러 가느냐

언젠가 이 날개는 도로 붙을까
언젠가 나는 그들이 날았던 하늘을
뒤쫓아 날아갈 수 있을까

춤추자, 춤추자꾸나
잘린 날개를 퍼덕이면서
흙탕물 속에서 춤추자꾸나
하얀 날개가
진흙에 뒤범벅이 되어
시커멓게 물들 때까지

언젠가 이 대지는
나마저도 집어삼켜
곱고 부슬부슬한 한 줌의 흙으로
토해내겠지

또 내일이 올지도 모른다
나에게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올지도 모른다

내게는 칼깃이 잘린 날개가 있다
내 둥지는 밤새 내린 비에 젖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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