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가진 유령

글/시 2012. 6. 30. 10:52 |
육신을 가진 유령


해가 하얗게 내리쬐는 날
보도블록 위에 서있는 내 발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가죽을 덧씌운 것 같은
그런 얼굴들이
강가를 내려다보면
풀잎 사이로 잠든 짐승의 심근처럼
흐르는 물살이
모두 파랗게 진동하는(너무나 밝아서 오히려)
유리잔의 목 같이 얇은 다리를 지닌 초식동물인 나를
멀리서 노려보는 굶주린 늑대의 눈동자처럼
나를 꿰뚫는다 나를
시체를 갉아먹는 구더기처럼 스멀스멀
좀먹는다

나는 태양 아래서 내 피가
타르처럼 검고 걸쭉하게 변해가는 것을 본다
나는 죽은 쥐가 썩고 부패하여
팽창된 눈알이 두개골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마치 그 썩은 눈알처럼
나의 심장도 부패하여 흔들거리다가 식도를 타고 넘어와
내 입에서 쏟아진다 왜냐하면
만물을 자라게 하는 태양이 빛나는 날에도
늙은이들이 지팡이를 짚고 경쾌하게 걷는 거리에서도
내 두 발은 오래된 폐허의 비석처럼
부서지고 무너져서 바들바들 떨고 있기 때문이다 날개가 잘린 잠자리처럼

표정들이 나다닌다 단단한 갑각을 가진
게처럼 재빠른 발동작으로 옆으로 옆으로 걷는다
그런데 나는 거울로 만든 감옥에 웅크리고 앉아서
거울 속의 그들이 나를 노려본다고
그들이 내 뱃가죽에 칼을 꽂으러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한밤중 굴속에 숨어있는 야만인처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끔 바깥을 내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돌과 나무와 흙으로 만든 모형 도시 속에서
덜그럭거리며 걸어 다니는 마리오네트들의 공포극 밖에는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둥절하여 겁을 집어먹고 문을 잠그려고 한다 하지만
열쇠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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