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變態)

글/시 2012. 6. 21. 23:40 |
변태(變態)


내 골반 뼈 속에는 벌레가 한 마리 살고 있다.
그것은 지네처럼 기다랗고 무수히 많은 다리가 달렸으며
단단한 갑각은 내 체액과 피로 반들반들하다.
내가 음식을 씹어 삼켜 그것이 식도와 위장을 거쳐
뱃속으로 떨어지면 녀석은 그것을 훔쳐 먹고 몸을 키운다.
충분히 많은 힘을 축적하면 녀석은 마침내 자신의 턱으로
내 골반 뼈를 부수고 밖으로 기어 나올 것이다.
내 배에 구멍이 날 때 녀석의 꼬리에는 나의 내장들이 걸려
밖으로 끌려나오리.

내 눈에는 모든 광경들이 생생하게 보인다. 그 장엄한 벌레의
번쩍거리는 검은 눈알과 붉은빛으로 빛나는 껍질이.
내 골반 속에서 기어 나와 전갈의 독침 같은 꼬리에 나의 창자를
신혼부부의 자동차에 달린 깡통들처럼 요란하게 매달고!
녀석은 나의 모든 것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며
사방을 핏자국으로 칠하다가 가죽만 남은 나를 내버려두고
곰팡이가 피고 습기 찬 어두운 천장 틈새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안다. 내 골반 뼈 속에 나의 영혼과 똑같이 생긴 벌레가
한 마리 살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 뼈를 부수고 나올 때에 처음으로 나는 녀석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보는 일이 없으리. 왜냐하면 녀석에게는 흉측스럽고도
자유로운 다리가 수도 없이 달려있는 데에 비하여
나는 독에 중독되어 곧 무너져버릴 것 같은 나약한 두 다리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

나는 참으로 기대된다. 내 골반 뼈가 부서지고 뱃가죽에 구멍이 나는
그 날이. 왜냐하면 나의 살점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며 자란
나의 벌레는 그때 최초로 자유롭게 활개치고 다닐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은 습성에 따라 가장 어둡고 기이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똬리를 틀고 지나가는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거나 가끔은 천장에서 덮치듯이 떨어져 잠자는 시민들의 목에
자신의 단단한 턱을 박아 넣을 것이다.

가죽만 남은 나의 시체는 썩어서 또 어떤 작은 벌레들의 먹이가 되리라.
그러면 그 작은 벌레들도 나의 살을 먹고 몸집을 키우겠지.
어쩌면 사람들은 그 작은 벌레들을 자신의 뱃속에 키우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오,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대가 된다. 이 모든 변태(變態)와 포식의 결말이.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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