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나오면 막다른 골목


어제는 몹시도 술잔을 비웠습니다
전날도, 그 전날도
새벽에도 등 밝은 어느 맥주집에서
벌써 2월도 끝나가는데, 그 집 창문에는
성탄절 램프들이 깜박거리며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고
나는 코트의 지퍼를 목덜미까지
바짝 여미고, 황금빛
황금빛 잔을 연달아 입으로 옮겨가고
그러나 누구와 마셨는지
어느 누구와 장대한 허풍을,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예술이니 삶이니, 하는 것들을
비싸고 덧없는 안주처럼 주워섬겼는지
그런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가게에는 어느새 우리밖에
누군지 모를 우리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 마시고, 골짜기를 흐르는
샘물의 소리처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무자비하게 뛰어내리는 폭포수처럼
귀청 떨어질 웃음소리를 내다가……
멍한 채로 나는 아직 동트지 않은
어렴풋이 가로등 빛이 보이는 골목에 서서
한 모금 한 모금 담배를 태웠습니다
늦겨울 추위에 만취한 몸은 떨리고
나는 연기를 계속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한 잔을 마시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돈은 없이, 다만 술은 계속 내어와 지고
또 한 모금 한 모금
벌써 며칠째 나는 마시고 있는지, 몰래
눈앞의 표정 몰래 세어보며
알코올에 붉어진 얼굴과 눈동자로
도대체가 낯모를 눈앞의 그 얼굴을
한 모금, 한 모금씩 바라보는 것입니다
해는 곧 뜰 터이고, 인조가죽 지갑에는
단 한 장의 지폐도 없이.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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