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기록/생각 2022. 11. 3. 1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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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에 손도 대지 않았을 때 판단력이 흐려지고 오히려 술잔을 들이킬 때 뇌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생활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끔찍하게 화가 난다. 그럴 때면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내가 오늘 태양이 뜨는 것에 대해, 혹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다고 울분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여하간 해는 떴고 나는 잠에서 깬다. 나는 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서 악다구니라도 쓰고 싶지만 그런다고 무언가가 변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톨스토이도 죽었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난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만은 인간으로서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보다 나은 것이다. 그따위 생각을 하다 보면 바보처럼 웃음이 나온다. 나는 심지어 링컨이나 뉴턴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다. 우리는 생명체이고 어쨌든 그들은 모조리 죽었으니 말이다.
 분명히 어디에 술병을 감춰뒀었는데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감춘 술병을 집안의 누군가가 다시 감췄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제 마신 술이 아직 체내에서 다 빠져나가지 않았기 때문인지 장난감을 잃어버린 어린애처럼 온 집안을 뒤지며 서랍과 찬장 따위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러나 말해둬야 할 것은, 내가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명히 나는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다. 다만 혈관에 알코올이 흐르지 않으면 현실에 내버려져있는 자신이 너무 비참해 견딜 수 없을 뿐이다. 만일 내가 비참하기를 선택한다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술을 먹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비참함이라는 단어는 과소평가 되어있다. 나 홀로만 괴롭다는 문제가 아니다. 고통밖에 느낄 수 없다면 사람은 주변에 고통밖에 흩뿌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게 음주는 인도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튼지 간에, 나는 내 술병을 찾을 수가 없었고 밖에 나가 술을 사올 수도 없었다. 돈도 없을뿐더러 거리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잊어보려고 3시간 정도, 20년 전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를 보았다. 어느 정도 목적한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내 방에서, 이 건물에서, 이 도시에서, 이 행성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공허한 감정만 몰려왔다. 약 5년 전만 해도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이프로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내곤 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출혈이 일어나면 엔돌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안정된다는 의학 정보를 분명히 어딘가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내 몸에 칼자국을 내는 짓은 그만두었다. 아마 정신과 처방 약물이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자해행위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내 머리통이 정신을 위한 편안하고 안락한 거처가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공허하고 비참―이 단어를 쓸 때마다 오해받을 가능성에 대해 반사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무슨 상관인가, 저들 좋을 대로 생각하라지―하며 은연중에 몹시 화가 나 있다.
 결국에 나는 리튬과, 클로나제팜, 인데놀,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알약들을 삼킨다. 아무 음악이나 틀어놓는다. 내가 사용하는 스피커는 카시오페아 음향에서 만든 나쁘지 않은 제품이다. 중고품이라 여기저기 뜯겨나간 파트도 있지만, 음향과 관련된 부품은 아니니 별 상관은 없다. 그리고 자리에 눕는다. 책을 좀 읽다가 머릿속이 멍해지면, 혹은 중추신경 기능에 타임 래그가 발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가끔 운이 좋으면 감은 눈꺼풀 안에서 음악이 색깔로 보이는 공감각 현상을 겪기도 한다. 대체로는 그냥 쓰러진 채 사지가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지금 집안에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될까 공상하다가 의식을 잃는다. 눈을 뜬 뒤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이고 무슨 일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저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누워있을 뿐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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