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日

기록/생각 2022. 11. 3. 01:40 |

一日


 오늘도 폐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기침이 멈추질 않아 잠에서 깼다. 오후 1시였다. 한동안 콜록거리며 이불 위에서 온몸을 뭉개다가 일어났다. 세수를 한 뒤 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벌써 11월이라서 대낮인데도 바람이 쌀쌀했다. 나는 골목 앞에서 담배를 꺼냈는데, 마침 돗대였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일 것이라 생각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돗대를 피운 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라고 믿는다.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10년 전 즈음, 어느 날부터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새 담배를 개봉할 때마다 한 개비를 거꾸로 꽂아놓고, 나머지 담배를 다 피우기 전까지는 손도 대지 않는다. 내 나름의 점(占)과 같은 것인데, 사실은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게다가, 만일 하루에 한 갑 이상씩 담배를 피운다면 매일이 운수 좋은 날이 되리라는 문제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믿기로 했다는데 누가 굳이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여하간, 기분 좋게 담배를 빼 물고 있는데 뜬금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마 전날 시집을 읽다가 잠들었기 때문일 것인데, 십몇 년 전에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ㄱ모 씨에 대한 기억이었다. 하필 어제 읽던 어느 여류작가의 시집 옆에 ㄱ모 씨의 유작이 꽂혀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19살이었다. 나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지인의 지인이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무슨 여자관계 때문인지 가족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우울증 때문에 죽었다고 들었다. 즉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아니, 열차에 치여 죽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명백하게 알고 있겠지만.
 나는 내 ‘행운의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했다. 만일 그도 나와 같은 사소한 습관이 있어서, 그날 아침에 돗대를 피웠더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빌렸던 돈을 하루 만에 모조리 갚고 철로 위로 달려가는 일은 그만두지 않았을까? 적어도 돗대를 피우지 않은 날로 자살을 유예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별다른 맥락도 없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 나는 그와 실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저 이야기를 전해 듣고 유작을 한 권 가지고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은 그에 대해 길게 고민을 할 정도로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십몇 년 전의 일이 아닌가.
 타르와 니코틴 따위가 허파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난 다음에야 졸음이 떨어져 나갔다. 이제야 하루가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ㄱ모 씨의 유작을 꺼내 몇 페이지 읽어보았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불을 발로 차 한쪽으로 밀어놓고 방안을 한 바퀴 돌았다. 오늘도 이렇다 할 계획은 없었다. 시계를 보니 깨어나고서부터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베란다로 가서 플라스틱으로 된 커다란 술통을 꺼내왔다. 직접 담근 매실주가 든 통이었다. 통을 들고 기울여 머그컵에 가득 따르고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매실주를 한 모금 마시자 텅 빈 위장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은 수요일이었고, 실상 수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다를 것도 없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아침 약을 술과 함께 삼켜버리고 컴퓨터를 켰다. 작업용으로도 쓰고 오락용으로도 쓰는, 오래된 데다가 얼마 전부터 자꾸만 모니터에 이상한 명령어가 떠오르는 고물이었다. 키보드 옆에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문뜩, 재밌는 작품을 쓰기 전에는 어지간하면 죽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불쌍한 19살 청년 같으니, 자살할 날은 언제든지 다시 정할 수 있었을 텐데.
 매실주를 다 마신 뒤에 나는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다시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이제 정말 뭐라도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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