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 나는 지금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여전히 북인도에서 수행에 힘쓰고 있는지, 행자 생활을 마치고 비구니계를 받았는지, 혹은 어떤 이유 때문에 러시아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도 말입니다.
 사실 당신에게 연락을 하는 일 자체는 쉬운 것이었습니다. 내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직도 당신이 적어준 이메일 주소가 적혀있으니까요. 그러나 알다시피 나는 단 한 번도 이메일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칠불암의 주지 스님께 전화를 건 일이 두 번 있었습니다. 정확히 무언가를 바라고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것은, 내가 맨정신일 때 절대로 하지 않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여하간에 나는 두 번 전화를 걸었고 주지 스님께 똑같은 대답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수행에 힘쓰고 있는 중이며, 그렇기에 징월 거사가 자꾸 연락해서는 안 된다는 얼음처럼 차가운 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7년 넘게, 나는 당신에게 연락할 생각을 완전히 접고 말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출가할 의지를 품었을 때 당신은 내게 의견을 물었지요. 자주 그 생각을 합니다. 칠불암의 본당에서 조금 내려가 얕은 계곡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대화했습니다. 네댓 개월 동안 우리는 함께 전국의 산사를 모두 보러 다녔었지요. 마침내 칠불암에서 당신이 출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때 나는 사실 그리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처음 당신을 만난 곳이 경북 봉화의 산사 아니었습니까.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솔직히 나는 혼란과 공포에 빠졌습니다. 회색과 푸른색이 섞인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 투명해서 그 안에 자리 잡은 영혼까지 전부 보이는 것 같았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그런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순히 눈동자의 색깔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내 오랜 친구 앤드류의 눈동자도 당신과 비슷한 색깔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누가 보아도 사바세계에서 고통과 체념에 발버둥 치며 사는 인간의 눈입니다. 그러니 내가 놀라고 심지어 공포까지 느꼈던 것은 당신의 눈동자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어떤 낯선 것 때문이었겠지요.
 사실 그때 나는 가능하면 당신에게서 떨어져 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산사에서는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주지 스님과 나밖에 없었던 탓에, 스님은 내게 ‘아냐의 절 생활을 가까이서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대화하고, 항상 둘이서 울력을 하고, 산길을 산책하고, 공양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어느샌가 나는 당신의 눈에서 비쳐 보이는 낯선 그 무엇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늘 고요하며 침착했고, 얼굴에서는 불상에서나 볼 수 있는 조용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7년 전 그 시절, 나는 자신도 모르게 살면서 처음 맛보는 행복에 빠져있었습니다. 당신과 전국의 산사를 찾아다니며, 곁에 당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고통과 절망이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이 편지를 쓰다 당시에 썼던 수첩을 찾아냈습니다. 감상적이며 과장된 표현들이 가득 써 있는 것이 낯부끄럽기도 하지만, 수첩의 페이지 중 일부를 이 편지에 붙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가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리라고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갑자기 왔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에게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이런 것이 내게 허용되는 것인지 의심했다. 나는 내가 망가진 인간일 뿐만 아니라 세상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여전히 고통스럽고 발리움과 벤조디아제핀 따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고통이 예전만큼 저주스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고통은 내가 반대의 것, 이를테면 숭고한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어느 의사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을 그녀가 알려주었다. 나는 지금 동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다. 태양이 떠오르면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예전에 나는 태양 아래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사물들의 형태가 명백히 드러나는 대낮에도, 나의 눈은 그림자에 가려져 절망과 캄캄한 어둠 속만을 떠돌아다녔다. 나는 내가 괴물이라고 믿었다. 아는 것은 고통뿐이고, 주변 사람들마저 고통스럽게 만드는, 역병 같은 존재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얼음송곳처럼 날카로우나 위협도 공포도 느낄 수 없는 빛을 발견했다. 나의 영혼의 살에는 불현듯 피가 돌고, 내 병든 심장에는 열정이 방망이질 친다. 나는 이 모든 일이 꿈이 아니라고 믿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꿈이고 내가 깨어나 버린다면, 나는 더이상 그 어떤 할 말도 없게 될 것이다.”

 아마 당신도 나도 몰랐겠지만, 아냐, 당신은 내게 우상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출가한 후 나는 7년 동안 그 어떤 여자와도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의무나 금욕적 생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무런 의욕이 없었습니다. 다시 칠불암의 계곡에서 했던 얘기로 돌아가죠.
 당신은 내게 출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계곡에서는 투명하고 빛나는 물줄기가 소리를 내며 흐르고 가끔 물거품을 튀기곤 했습니다.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나는 더 이상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의외로, 충격적인 것들이 가장 먼저 잊혀지기도 하는 법입니다. 나는 그때 머릿속에서 떠올라 입으로 튀어나온 몇 가지 말들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고해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구도의 길을 걷겠다는데, 내가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내게는 그럴 자격도 권리도 없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남녀와는 달리 육체관계를 맺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나에게 아무것도 빚지고 있지 않고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요. 우리가 서로의 육체로 한 일이라고는, 석양이 질 때 대청마루에서 손을 포개고 하늘이 완전히 밤으로 뒤덮이기를 기다렸던 것이나, 매일 몇 시간씩 산길을 돌아다니며 아이처럼 장난치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금도 나는 당신이 나의 연인이었다고 말하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친구나 도반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육체적 관계를―당신도 나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가진 상태였다면, 나의 이기심을 위해 당신이 출가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까요.
 아무튼 당신은 칠불암에서 출가하기로 했습니다. 삭발이 예정된 바로 전날,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짐을 싸 들고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의정부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넋이 나간 상태였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창문을 모조리 신문지로 막고 2개월 동안 거의 먹지도 밖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궁상을 떨며 안 그래도 적은 체중이 5~6kg이 더 빠지고 피부에는 곰팡이 냄새가 배었습니다.
 벌써 7년이 넘게 지났네요. 당시에 쓰던 수첩의 마지막에는 마치 스스로에게 선언하기라도 하듯 ‘꿈은 끝났다.’라는 문장이 볼펜으로 꾹꾹 찍어눌러서 쓰여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꿈이었는지조차 모호하지만, 당신과 함께 있었던 반년이 꿈 같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편지는 어디로 발송될까요. 당신에게 이 편지가 닿든 그렇지 않든, 나는 단 한 가지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다시 찾아오기나 할지, 찾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기는 하더라는 사실을 당신이 가르쳐준 것 말입니다.
 다만 아직도 안타까운 것은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안나야리기나’라는 첫 부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중간 이름도, 성도 전부 기억 속에서 흩어져버렸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마지막 남은 당신의 이름마저 앗아가게 될까요. 그렇게 된다면 그 망각은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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