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인간애 뿐인 것이다. 세상이 진흙탕인 것은 단 한 번도 변한 일 없고 사람들은 똑같은 고뇌만 반복하다 돌아갔다. 그러니까 인간애인 것이다. 일본의 키가 작은 시인은 역전에서 헤매다 남고생 한 명을 붙잡고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냈다고 한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오. 아마 그 거동수상자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극 같은 것을 말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그 누구에게도 없다. 말하든 말하지 않든 변하는 것도 없고, 이미 각자의 비극 속에서 나름대로 살고 있다. 나불나불 떠들지 않아도 어차피 다들 살아가고 있다. 항복하는 이들은 항복하면 그만이고, 그렇지 않으면 또 그렇지 않은대로 패배하면 그만이다. 결과가 전부라고 나름 멋을 내며 말들을 하지만 따져보면 모든 생명의 결과는, 결말은 똑같지 않은가. 그러니 결과라는 것은 단 하나의, 모든 것을 수렴하는 평등뿐이다. 그렇기에 결과가 전부라면 모든 이들은 지저분한 허무주의자밖에 될 것이 없다. 살아있으면 그만이다. 한 평짜리 감옥에 있든 초원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든 살아있으면 살아있는 것이다. 뫼르소는 감방 안에서 벽돌들의 모양을 더듬고 짚단 밑의 신문조각을 찾아내 '드넓은 세상'이라는 것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고 알아차렸다. 살아있으면 패배할 때까지는 패배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인간이 말하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이미 인간이라는 뜻이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도 되고 나가지 않아도 된다. 살면 그것으로 할일은 다 하는 것이다. 조르바도 영웅이고 지하생활자도 영웅이다. 그러나 딱히 영웅이 될 이유도 없다. 캉디드가 비극으로 끝났다고 말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사람은 사람이고, 어차피 쓰러진다. 뭘 하든 좋다. 아나키즘이나 도덕적 불구 같은 용어랑 연관시키고 싶지는 않은데, 어찌 될 지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사랑이다. 삶을 사랑할 수 있으면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단어의 범위를 무자비하게 확장시키는 것이다. 뭐든지 허용되는 자유는 치명적이지만 사실 보편적이고 선험적이다. 어떻게 할지야 각각 사랑의 의의에 달려있고 금지되는 개념도 없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인간 아닌가.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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