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끝

글/시 2018. 9. 23. 01:05 |

영원의 끝



알코올에 젖어서 본 한밤의 나뭇잎은

대낮에 본 그것보다 선명한 푸른빛이었고

밤의 이슬을 머금어 알코올을

뚝뚝 듣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달은 제 본모습을 빤히

내보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 눈은

소주에 젖어 명백히 흰 달빛을

천사를 만나듯 영접하고 있었다


거리에서는 모래들 쓸리는 소리가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듯 스르륵 스르륵

내게 영원한 안식을 암시하며 노래를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차들의 엔진 소리는

<이제 곧 끝날 거야>라고 읊조리며

한껏 엑셀을 밟은 채 멸망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밤의 거리에서 벌어온 흰색의 금화들은

뚝뚝 떨어지며 빗방울 소리를 냈고

내 팔뚝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웃는 채로 새겨졌다


언젠가 편히 쉬시길, 나는 웃으며 외쳤고

밤은 무게도 없이 가라앉아 오고

알코올이 떨어지는 푸른빛의 나뭇잎들은

궤변가처럼 생명의 영속을 말한다


검은 구름, 달은 보이지 않고, 해는 얼어붙었고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나는 취해 몸부림치고

까만 시멘트 바닥에서 뒹굴며 묻는다

<내 꿈들은 어디로 갔지?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이지?>


한 달에 한 번, 자본주의에게 얻어맞으며 고개를 숙이고

안녕, 내 은화로 살 수 있는 위안들아

슬픈 사람들은 내 혀를 찾아 지친 발을 더듬거리고

당신은 마땅해요, 반복되는 거짓말들, 숨겨진 조소


섬에서 봤던 야밤의 파도를 기억한다

지구의 생살을 송두리째 기억하는 몸짓들아

꺼진 등대는 아무것도 비추지 못했다

취한 배여, 뭍은 어디에도 없어라


흔들흔들, 나는 눈 밑에 눈물 모양의 문신을 새겼다

떠난 사람들을 추억하려 했지만 눈물샘은 망가졌다

비척비척, 내 머리는 줄곧 한숨을 토한다

가야할 곳을 잃은 다리는 길바닥에 쓰러진다


내가 누구에게 빚을 졌지? 모두가 묻는 질문

아니야, 갚아야 될 것은, 숨 쉬면서, 울면서 청산했다

멈출 줄 모르는 발 앞에 펼쳐진 사막, 어디에도 없는 문

애초에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신이여! 아니면 자연이여! 혹은 운명이여!

언젠가 내가 쓰러져 태양의 빛살에 녹아

백골만 남았을 때 바람으로 그것도 녹여주오

나는 아무런 희망도 기대하지 않으니


걷는 존재, 걷는 현상, 나는 꺼지는 불꽃

빛이 있으니 밤은 오고, 나는 평생 하얀 밤을 본 적이 없으나

사무치게 그것이 보고 싶었다, 환희하는 죽음

나 꺼질 때, 사그라들 때, 저 끝에


공허가 어떤 색깔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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