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구두
나는 걷는 구두
밑창은 해지고 코는 닳았다네
갈대들이 내 목을 간질이고
뚫린 코에 들어오는 진한 돌, 흙 내음
나는 걷는 구두라네
하늘은 가끔 비를 내리기도 하고 해를 띄우기도 하지
나는 모래를 걷어차며 그것을 보네
내 가죽은 젖었다가 마르고, 더욱 뻣뻣해지고
그러나 오랜 걸음은 또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
나무와 풀들은 말이 없어
사막도 걸었고 해변도 걸었지
내 코엔 온 세상의 정수가 빨려 들어왔다가 도로 빠져나갔고
심지어 태양의 냄새까지 나는 맡아보았다
어둠의 냄새도, 달의 냄새도 날 짓눌렀다 가고
바람은 나의 온 가죽을 부드럽게 애무하였고
나는 그것들을 기억하네, 아니, 기억하지는 않아 사실은
바로 바람에 흘려보내버렸지, 내 뒷굽 너머로
태양에 달궈진 돌들은 뜨거워
밤의 얼어붙은 모래는 송곳 같아
나뭇잎 사이로 생명이 오락가락하고
나의 작은 그림자를 오래도록 따라오는 죽음
나는 걷는 구두
보고, 맡고, 듣고, 담았다가
내뱉어낸다.